감정이 뭔지 애매한 걸까
그녀는 그에게 많은 감정들을 이야기하는데도
나에게는 제대로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나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린 이 문제를 덮어두고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운데도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 소통이 단절된 것이다

자신을 믿느냐는 말에 나는 믿는다고 대답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는데도 나는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나는 그에게 했던 말들이 모조리 거짓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당신도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에요. 미안해요 같은 말은 못 하는 걸까

그와 나눈 편지들 사이에서 나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빠였다. 후회한다와 같은 말은 그에게 하지 않는다

자존심. 자존심이 뭘까

나와 같이 있는 시간 속에서 그의 별자리를 친절히 해석해주고

달을 보면 많이 생각나는 것이 자존심인가

기다린다는 말에 너무 설레였다는 것도 자존심인가

연락을 못해서 너무 괴롭다는 것도 자존심인가

내가 구글에 있던 메일을 보게 되고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가 기다린다고 했던 말 뜻이

날 정리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둘이서 무엇을 담합한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이제 더이상 우리 사이에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린다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나와 정리하길 기다린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내가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마련해서 주기적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내가 볼까봐 사용하는 메일까지 바꾸었다

다 지난 일이다

이제는 내게 돌아왔으니 끝난 일 아닌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 선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애초에 선택이고 뭐고 내가 좋으면 노력이고 뭐고 그냥 돌아오면 끝 아닌가

나는 내 상처를 치유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치유할 수 없다

나는 그녀가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나와 같이 있으면서도 이 미완성된 미니드라마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에게 계속 남을 거라면

나와 함께 있으면서 계속 그 사람을 그리워할 거라면

무언가 좋고 즐거운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날 거라면

나는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

시시 때때로 방문하는 그의 두드림에는 또 얼마나 설레일 거란 말인가

그에게 엎드려 사정하고 싶을 지경이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난 정말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