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장의 앨범을 사고 나서 생각

벼르고 벼르던 Supercar의 HIGHVISION 앨범이 도착했다. 국내 구매대행 업체를 이용해 일본 아마존에서 산 것이다. 두 장을 사서 한 장을 지인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반응이 제법 괜찮다. 사실 일찌감치 들었던 음악들이지만 여전한 감동은 어떻게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앨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 Storywriter와 Strobolights를 다각도로 이용해 보려 하니 제약이 많다. 우선 CLubCyon에서 제공하는 툴로 휴대폰 벨소리를 만드려고 했는데 곡 가운데 20초 정도만 사용할 수 있단다. 파는 것에는 80초짜리 벨도 있고, 내 휴대폰은 MP3 재생이 지원되는 데도 그렇단다. 하는 수 없이 어떻게 잘 짤라서 휴대폰으로 전송했는데 생각보다 음질이 엄청나게 구리다. 인터넷에 보니 직접 제작하는 방법이 있는데 너무 복잡하다. 그냥 뮤직온 로딩 몇점 몇초 걸려도 좋으니 MP3로 바로 쓸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데 그게 안된다니 참 한심스럽다. (휴대폰에 MP3 기능이 들어간 게 몇년 전인데...)

다음으로 필링(컬러링, RBT라고도 하는)을 설정하려는데 제작할 방법이 없다. 무조건 사야 한단다. 찾아보니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 없다. (당연히, Supercar는 국내 아는 이가 매우 드물 지경이니...) 그래도 통합 부가서비스 때문에 별수 없이 필링을 쓰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본 곡인 사계·봄 만을 하기는 뭐해서, 눈에 띄는 양방언의 곡이라도 넣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보니 돈아깝다. 왜? 우리 집에 멀쩡히 사둔 양방언의 Echoes 앨범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기왕에 저작권을 통합해 관리하는 기관(?)이 있으니 그곳에서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하는데 그런 발상을 아무도 못하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발매된 CD들의 고유 번호를 저장하는 서버를 저작권 협회에 두고, 씨디를 구입한 사람이 온라인에 번호를 입력하면 필링이니 벨소리니 싸이 BGM이니 뮤직온이니 하는 것들을 (해당 곡에 대해서는)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서비스 업자들이 좋아하는 사용자 계정과 연동한다면 불법적이고 광범위한 이용을 애초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CDDB와 가사 서버 같은 것도 두어 PC에서 재생할 때 도움을 준다면 더 좋겠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수준을 보건대 결코 이런 서비스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씨디를 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음악을 듣기만 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다방면으로 활용하려면 이중 삼중으로 돈을 내야 하는데 누가 씨디를 사겠는가? 그렇다고 씨디가 듣기만 한다는 측면에선 저렴한가? 월 오천원 수준이면 월 수만곡 이상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다운로드 요금제가 얼마든지 있다. DRM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월 만원 수준에 백곡 이상 받을 수 있는 DRM프리 요금제들도 있다. 그게 비싸고 불편하면 그냥 불법 사이트에서 다운받을 것이다. 엄연히 음악과 관련된 서비스를 받기 위해 다방면으로 돈을 쓰고 있는데 누가 해적질을 한다고 죄책감을 느끼겠는가? 모 인디 밴드처럼 가내수공업으로 CD를 제작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청취자의 양심 운운하는 기업들의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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