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기르기 생각

평소 꿈이, 초가집 한 채에 초목죽석을 병품처럼 갖추고 싶어했더랩니다.


자연주의자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그저 물욕인데,


언젠가 다산 문집에서 정원 꾸미는 이야기를 접한 것은 그 욕심에 쓸 데 없이 불을 지른 격이 되었죠.


그러나 당장은 돈이 없으니 집은 못짓고 우선 화분이나 키워볼까 하고는
올 초에 키우기 쉽다는 것을 찾아서 나비란과 알로카시아를 한그루 씩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 녀석들, 정말 키우는 재미가 있더군요.


전에도 사실 화분을 거둔 적이 있지만


가장 잘 큰다는 놈을 가져다 두어도 누렇게 말라 죽어버리는 것이,


영영 뭘 키우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쑥쑥 잘 자라주고.


화분을 돌려 두면 잎을 햇빛 나는 쪽으로 쭉 뻗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 이를 데 없더랍니다.

 

 

문제는 지난 달 즈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알로카시아 양 잎에 거미줄 같은 것이 끼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에는 까만 벌레, 한쪽에는 허연 벌레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각각 총채벌레 깍지벌레랩니다.


뭐 대수냐? 했더니만 잎에 누렇고 허연 구멍들이 생겨납니다.


놀래서 알아봤더니 한 5일 열심히 해치워주면 된다고도 하고, 해충제를 사다 뿌리라고도 합니다.


현행법상 규제가 있어 꽃집에는 없고 농약사를 찾아야 한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4천원이면 삽니다.


그러나 화분에 갇힌 맨흙에 살충제질을 한다는 게 영 찝찝해 방치해두다가,


허연 실뭉치 같은 것들이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 되자 비로소 손을 들고 정리에 나섰습니다.


걸레, 화장지로 잡아도 보고


샤워기를 세게 틀고 씻겨내도 보았지요.

 

 

그런데 본래 벌레를 두려워하는 데다


마치 빨간 피처럼 보이는 깍지벌레의 시체를 접하니,


문득, 이게 뭐하는건가 생각이 들더라구요.

 

 

천지만물이 죄다 죽이면서 살아가는 거래지만


이놈 벌레들이 나 살아가는 데 방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무야 너른 평지였다면 하나 죽어 또 그 자리에 두셋 나고 그만일텐데


공연히 이쁜 꼴을 보겠다고 싹을 베어다가 가둬 놓으니


식물이고 벌레고 사람이고 너나없이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했습니다.

 

 

되는 대로 놔뒀다가 나중에 죽으면 확 뽑아버리고


빈 화분엔 요즘 많이 한다는 지렁이나 키워볼까?


그러나 나 없으면 굶어 죽는 생명이 더 생긴다고 하니


그도 싫어집니다.


(누나가 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를 둘 키웁니다.)

 

 

아, 이럴 땐 참으로 어디 시멘트 안 깔린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습니다.



(2009년 9월 29일 수오화 당협 생태위원회 게시판에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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