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기의 피곤함 IT 생각

전자기기가 넘쳐난다. 노트북, UMPC, MP3, 스마트폰, 일반 휴대폰, SLR 카메라, 컴팩트 카메라, 두 대의 대형 모니터, 두 대의 PC, 기타등등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방치된 채 널부러져 있다. 얼핏 들으면 대단한 얼리아답터거나 갑부라도 되는 줄 알겠지만, 실은 그냥 PC생활 십수년만에 절로 쌓인 보상에 불과하다. 이것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곳곳에 여러 파생 잡동사니(박스, 케이스, 배터리, 케이블, 기타 부속품 등등)을 뿌려대는 바람에 집안이 도대체가 정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기껏 할 수 있는 거라곤 커다란 박스나 서랍장을 하나 잡아 모두 쓸어 넣는 것인데 이래서야 쓰레기통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정리한답시고 한번 그 면면을 살펴 보면 사실은 기능상 중복되는 것들이 눈에 띈다. 동일하게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거나 PC와 연결해 데이터 전송을 하거나 하는 것인데 단지 포트의 크기가 크고 작음으로 해서 저마다 각각 따로 보관해야 하는 것이니 이만한 낭비가 또 없다.

이런 문제는 비단 눈에 보이는 물건들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내 PC 안의 파일들은 서로 다른 온갖 형식으로 엉켜 도대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모든 것을 오픈오피스 포맷 안에 밀어넣기로 하고 정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후 몇년 일을 하면서 파일들을 주고받고 나니 다시 또 엉망이 되어 버렸다. hwp, doc, txt, rtf, odf, pdf, xps, html, xml, 기타 등등... 문서 포맷은 넘쳐난다. 뭐, 그래도 이런 것들은 API만 있으면 용서해줄 수 있다. 스크립트를 쓰건 노가다를 하건 처음에만 좀 고생하면 특별한 비용 지출 없이 하나로 묶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폐쇄된 것들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아니면 프로그래밍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들. 스마트폰들의 문자메시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데, 국내 통신사들의 정책과 (자신들 주장에 따르면)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독자적인 형식을 이용하는 SMS와 MMS는 PC에서 읽어들이려면 통신사나 휴대폰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용 백업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수 밖에는 없다. 이들 문자 프로그램은 수많은 SMS 연동 어플들이 존재하는 윈도우 모바일 생태계에서 누구와도 연동되지 않는 이단아들이다. 그중에서도 MMS의 경우 저작권이 존재하는 컨텐츠라는 이유로 백업조차 안 되게 막아놓은 경우가 허다하다. 사업상, 일정관리, 인맥관리상, 혹은 소싯적 연애쪽지를 죽 모아둘 생각으로 모든 문자를 정리하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암울하다.

여러가지로 정신이 없다. 간만에 노트북을 포맷하고 받아둔(불법 SW들을 말하는 것이 아님) 프로그램들로 설치해보려 했더니, 저장된 것들은 x64이고, 노트북은 x86이란다. 집에 램이나 업그레이드 해주려고 했더니 DDR1이란다. 지인은 AGP 그래픽카드를 알아봐달란다. 서버들은 어지러이 윈도와 리눅스가 뒤섞여 있고, 관리하는 홈페이지들은 ASP ASP.NET 자바 PHP가 섞여 있고, PC 한대는 인텔/엔비디아에 또 한대는 AMD/ATI 인데다, 집안에 개들은 서로 다른 화장실을 쓰고 있고, 또 뭐가 있지... 문자를 몇백개 밖에 저장 못 하는 전지전능 옴니아에 뭐좀 백업해 보겠다고 전용 프로그램을 돌렸는데 스마트폰에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안이 없다. 한심하다. 커뮤니티에서 제공하는 온갖 비책들을 구사해 본다. 안 된다. 윈도를 다시 깔았다. 그래도 안 된다. 과연 스마트폰 이름만큼 스마트 하다. 이 폰도, 이런 삶도, 참으로 징그럽다. 이제 또한번 대청소가 필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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