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에이즈 - 러시아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의 HIV/AIDS 참여 후기 생각

지난 주에 이어서 살롱 드 에이즈 세번째 시간에 다녀왔습니다. '러시아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의 HIV/AIDS'라는 굉장한 주제인데, 제 경우 주위 분들과는 달리 러시아사에 대한 지식이 얕아 지루하게 듣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예상과 다른 내용이 많아 무척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생소한 러시아 록 그룹 젬피라의 '에이즈(СПИД)'라는 곡과 함께 시작된 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구 소비에트에 에이즈 위기가 발생하게 된 계기와 그 이후의 전개를 연방 해체와 같은 사건들과 연관지어 여러가지 통계로 살펴보았습니다. 준비된 자료가 적지 않았는데, 일단 감염인 숫자나 증가 폭이 예상보다 많아 놀라웠습니다. 소비에트 시절에 서구권보다 낮은 감염률을 자랑했던 국가들이 연방 해체에 따른 혼란으로 폭발적인 감염인 증가를 겪은 것을 보니 질병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대응(국가계획)이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통계들에서는 한국과 다른 부분들이 보였는데, 이를테면 최근 몇년간의 HIV 감염 원인들을 보여주는 도표에서 주사기에 의한 감염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점이나,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감염 비율이 비슷한 점이 독특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여전히 과거의 편견대로 에이즈를 동성애자의 질병으로 취급하며 그 근거를 당대 러시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해외 자료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답답한 대목이었구요.

한편 예전에 시행되었던 에이즈와 동성애 관련 설문 조사 자료들을 볼 때는 러시아 사람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이러한 인식이 최근에는 선전금지법 입법과 혐오범죄들에서 보여지듯 2006년부터 꾸준히 악화일로를 걸어온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LGBT 커뮤니티의 퀴어퍼레이드 시도 등 다양한 가시화 노력에 따른 반작용과 경제 위기 속 여러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맞물린 것인데요. 이중 가시화에 따른 반발은 마치 영화 '레즈비언 정치도전기'에 나오는 2008년 당시 한국 사회의 LGBT에 대한 무관심이 최근들어 퀴어퍼레이드 방해 등 무척 가시적인 혐오 행동으로 변해온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삶은 더욱 힘들어 지는 가운데, 대안으로써 소환된 종교는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대신 퇴행적인 '정상'을 종용하고, 소수자들은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외면당하는 것 역시 반드시 러시아만의 이야기로는 생각되지 않아 많은 학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밖에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여기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평소 듣기 힘들었던 러시아 및 동구권의 현황과 감염인 실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어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구요. Q&A 시간에는 제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활동가 분들의 언어로 들으니 공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정상 뒤풀이는 따라가지 못해 무척 아쉬웠습니다. 멋지게 강의 들려주신 강사 종원 님과 동인련에 감사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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