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말 남도여행 4일차 개인

강진

강진에 가면 모텔에서 하루를 묵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어지간한 모텔에는 인터넷이 되는 PC가 있으니 여러 기기들을 충전하면서 사진과 영상들도 미리 빼놓아 용량을 확보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인의 간섭없이 밀린 빨래들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강진터미널에 내리니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텔(수인성 모텔)에 들어가 혼자라고 하니 3만원에 열쇠를 주는데, 들어가 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TV만 있을 뿐 PC가 없었다. 하긴 보통 컴퓨터가 갖춰진 모텔은 서울에서조차 입구에 대서특필을 하는데, 여기선 그런 것을 본 기억이 없지 않은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겠지. 대신 TV는 너무나도 잘 나와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하는 동물들의 생존 투쟁을 두 시간이 넘도록 시청하다가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일곱 시 반이었다. 역시나 늦잠이라 약간 불안했지만 일단 밥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두유로 대충 배를 채우고 터미널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첫 행선지인 다산초당으로 가는 다음 버스는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남은 9시 20분에 있다고 한다. 철도역에서 이어진 보성 차밭에 비해 교통편이나 경관 등 여러 이유로 찾는 이가 적다 보니 버스도 이처럼 드문 모양이다. 나는 보성에서처럼 시골길에서 버스를 기다린다면 모를까 대낮부터 터미널에 앉아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아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분이 말씀하시길 다산초당 뿐 아니라 부근의 백련사도 같은 금액으로 갈 수 있는데,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으로 가는 길이 내리막길이므로 백련사를 먼저 가는게 어떠냐고 권유하여 그러기로 하였다.

백련사는 다산 초당을 언급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곳인데, 동백숲 오솔길이 유명하고 다산과 이곳에 묵었던 초의선사의 인연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막상 내리고 보니 막막한 데가 있었다. 보광사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관광을 생각하지 않은 절인지 따로 입장료를 받는 곳이 없었다. 안에 들어간다 한들 또 무엇을 할 것인가? 기왕에 와서 헛걸음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보다는 동물원 구경하듯 스님들과 건물들을 말없이 둘러보고 나올 내 모습이 더욱 싫었다. 결국 입구 매점에 계신 분께 다산 초당으로 향하는 길만 물어본 뒤 지나쳐 왔다.

다산 초당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으로 향하는 길은 만덕산의 등산로에도 포함되는 길이다. 중도에 풀숲을 헤치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 반바지와 샌들을 신은 나에게는 부담스러웠으나 다행히 그런 길이 많진 않았다. 다만 여름에 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 벌레가 너무 많았다. 시도때도 없이 윙윙거리는 날벌레는 물론이거니와 오가는 사람이 적은지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은 커다란 거미집들을 나뭇가지로 휘저어 치우기를 몇 번인가 했다. 생각해 보면 한가한 사람이 공연히 여행을 와서 남의 주거공간과 생계수단을 망가뜨리는 것이므로 거미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들긴 했으나 주위로 피해 가기도 마땅치 않아 결국 그리 하고 말았다.

또 내리막길이라는 택시기사의 말과 달리 오르내리기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산초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못 가로 들어서자 뭔가가 꽥 소리를 지르며 물로 들어가버리는데, 끝내 다시 나오지 않아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초당은 전반적으로 울창한 숲 가운데 있었는데 원래 이러하였는지는 의심스러웠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듣기를 과거에 숲이 지금보다 훨씬 울창했을 것이라는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실제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는 산이 민둥산에 가까웠다고 한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다 보니 자라는 족족 베어버렸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다산 초당에서 9시가 지나가는 오전임에도 햇살이 좀체 들지 않으니 새삼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온통 그늘이고 벌레가 가득한데 여기서 다산이 엉덩이에 구멍이 날 정도로 꼼짝을 아니하였다고? 나중에 전문가를 만나면 물어 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몇 개의 건물과 다산이 성을 새겼다는 석벽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다산의 수필에 언급된 부유재나 여러 재밌는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좀더 천천히 돌아보고 싶었으나 폭염에 머리는 돌아가지 않고 물어뜯는 벌레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때 고민을 해 보고 또 나중에 깨달은 것이 있으니, 바로 한여름에는 이렇듯 문인의 자취를 따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인을 중심으로 한 관광지가 많다. 절경을 자랑하는 순천만이나 보성 다원은 그 배경을 알면 좀더 재밌거나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 정도지만 몰라도 보고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반면 다산 초당과 같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유명세만 믿고 갔다가는 허탈해 하긴 일쑤다. 당장 저 다산 4경을 보라. 뭇 사람들이 책자와 안내판의 문구를 따라서 입이 닳도록 찬양하지마는 가만히 살펴보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이름만 듣고 온 사람은 필경 자신의 여행 이력에 지명 하나 추가한 것에 만족하거나, 아니면 바닥에 침을 뱉고 가며 ‘이 나라의 관광지는 참 보잘 것이 없다’고 투덜댄다. 혹은 나중에 기억도 나지 않을 여행을 강요받은 학생들이 눈쌀 찌푸려가며 동네 뒷산에서 해도 괜찮을 등산을 한다.

그러나 설령 흠모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지극한 존경심으로 방문하는 이라도 유의해야 할 점이 있는 것이다. 한여름 땀 범벅이 되어 온갖 잡벌레들을 유인하며 오는 것은 사유하기도 어렵거니와 연신 부채질하며 또 벌레를 쫓고 있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닌 듯 하다. 돌아와서 얘기지만, 그때 내려오길 잘 했다. 만덕산에서 모기에게 물린 자리들은 지금도 자두처럼 크고 붉을 뿐만 아니라 그 부근이 손바닥만하게 부어올라 끝없이 가려운데 내 생전 이처럼 지독한 모기들은 또 처음 겪는 것이다.

해남으로

터미널로 돌아와 해남행 버스표를 끊고,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았길래 부근에 있는 영랑생가에 갔다. 이 유적은 터미널로부터 불과 400m 거리에 있는데, 가는 길에 건물 공사를 하는 것을 보니 강진에서는 이 부근을 관광지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생가 자체는 다른 문인 유적지가 그렇듯 초상화 하나를 빼면 썰렁하다. 영랑을 잘 모르는 관계로 생가 앞 돌에 커다랗게 새겨진 시를 읽어보려 하였으나 역시 정오의 지독한 폭염에 견딜 수가 없어 끝내 가을을 기약하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잠깐 사이에 해남으로 이동하니, 과연 분위기가 강진과는 전혀 달랐다. 터미널은 자전거를 탔거나 밀짚모자를 쓴 젊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것이 마치 여행 첫 날 순천에서 시티 투어 버스를 기다릴 때와 비슷했다. 관광지도도 빼곡한 것이 서둘러도 족히 이틀은 돌아다녀야 할 듯 했다. 지도 안의 장소들을 대중교통으로 다 가볼 수 있다고 한 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잠시 울적해졌으나 애써 잊어버리려 했다.

터미널 바로 옆 식당(청운정)에서 식사를 마치고 곧장 땅끝행 버스를 탔다. 밀려오는 피로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니, 곧 송호리 백사장을 지나 땅끝이다. 여기는 여러 모로 여수의 향일암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끝까지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 그러했고, 항구의 모습이 그러했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모습이 또한 그러했다. 평일임에도 차와 배들로 나름대로 분주한 항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제 본 율촌의 풍경이 잠시 그리워졌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인지라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바다 내음을 맡다가 천천히 전망대를 향해 올랐다. 모노레일을 타는 곳을 지나, 지압이 되는 돌길과 일반 흙길로 나뉘어진 잠깐의 경사를 통과하면 곧 셀수없이 많은 계단을 맞닥드리게 된다. 미처 예상치 못한 많은 계단이라 쉬어 가는데, 위에 보니 신기하게도 여기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어찌 된 걸까? 아마도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와서 전망대를 보고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그 동안 자전거를 세워 둘 곳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자전거를 끌고 갈 만한 경사로가 있을 거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계단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대답해 주니 서로 기운을 차리는 말을 해준다. 죽마고우인 모양인데 서로 비슷한 생각을 느끼고 나누는 듯 하여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부럽다. 생각을 나눌 수 있고 함께 땀흘리며 함께 여행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다만 타인과 함께 했던 여행의 기억 가운데 좋았던 것이 별로 없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은 상당부분 나의 수동성과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일정을 정했다고 한들 필경 다른 이들의 반발을 불렀을 것이다. 나와 가까운 이들은, 적어도 여행에 있어서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다. 나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거의 언제나 소수이기에, 스스로 너무나 독특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세상 전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내가 가진 관계망의 한계이지만, 넓히고 넓혀 언젠가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있다고 해도,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만 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방금 전의 관계망과 같은 생각들. 내 맘대로 쉬고 이동하며 덜 합리적이 되고 더 감성적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기도 한다. 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맘이 편하다. 설령 반평생을 함께 할 소울 메이트와 함께라 해도 홀로 떠나는 것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정상

한참을 더 오르니 마침내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본 전망대의 모습은 얼핏 두바이의 버즈 알아랍을 연상시켰으나, 기실 그것과는 생김새가 크게 다른 이 건물은 동방의 횃불을 상징하는 모양새라 한다. 건물 꼭대기에 오르니 새삼 산 정상의 9층이나 되는 탑이 아찔하다. 그런데 바다는 좌우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유리창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는 바다는 왠지 어색한 합성 사진을 보는 듯 이상하다. 곧 내려와 밖에서 다시 내려다보니 그제야 산 정상의 시원한 바람이 바다 냄새를 흘려준다.

이윽고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와 처음 땅끝에 도착한 곳 근처에 걸터앉았다. 버스표를 보니 광주 직통 버스가 6시 30분까지 있다. 떠날 것인지 묵을 것인지 묵는다면 보길도로 들어갈 것인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출발이 늦어져 하룻 밤을 엉뚱하게 보내버린 것부터, 땅끝의 일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뭉돌 해수욕장의 파도와 돌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내보고 싶었다. 배를 타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주를 준비하자면 여독을 해소하고 여행기를 정리해야 했다. 또 새 직장을 준비해야 했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자 잊고 있던 긴장과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긴장이 극에 이르면 잠이 오는 버릇이 있었는데, 순간 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주말 관광객 무리와 뒤섞이면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는 버스표를 끊고 돌아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햇빛을 쬐며 바다를 보았는데, 그 바다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근처에 출발을 기다리는 목포행 고속버스의 엔진 소리가 꽤나 컸지만 그뿐이었다. 큰 물과 배가 보이는 뻔한 풍경. 바람과 햇살이 끊임없이 유쾌하게 스쳐간다. 나는 껄껄 웃었다.

귀환

그 이후의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굳이 적자면 나는 버스를 탔고, MP3P를 꺼내 부활의 '소나기'를 틀었고, 잠들었으며, 다시 광주에서 깨어나 수원으로 향했다. 여행의 막바지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는데 다행히 행운이 따라주었다. 하루를 보낸 후 나는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여 이틀 째에 완성했다. 이것이 2011년 9월 4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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