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브로는 죽는가? IT 생각

 나는 와이브로를 좋아한다. 집은 수원이고 회사는 양재인데, 집에서 주 활동 무대인 서울 곳곳까지 버스, 지하철 가리지 않고 웬만한 곳은 와이브로가 다 터진다. 비록 요즘 와이파이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곳에 개방된 AP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어서, 특히 지하철 같은 곳에서는 와이브로를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의 기사들을 보면, 아무래도 와이브로는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와이브로의 미래와 관련해서 LTE 대비 비관적인 전망들은 작년부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올해 들어서는 죄대 사업자인 KT KTF와의 합병으로 와이브로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실상 와이브로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모두의 책임이 있다. 일단 올들어 가장 아쉬운 건 방통위의 태도다. 말로는 항상 와이브로를 독려하는데, KT의 합병승인 조건과 같은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와이브로 전국망 구축’같은 내용을 제외시킨 것일까? 320zdnet의 기사(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090319165857)를 보면 방통위에서는 ‘현행 제도에서도 충분히 KT의 이행점검이 가능’하며 또 KT에서 ‘직접 와이브로 활성화를 공약’했기 때문에 합병승인 조건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그러나 합병승인 조건에 포함되었더라면 기존에 KT의 투자가 당초 계획에 비해 미진했던 만큼 합병승인을 조건으로 투자 계획 이행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기존의 내용과 중복이 된다면 오히려 걸릴 것이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KT가 공공연히 와이브로 활성화를 약속했다고 해서 조건에서 제외했다는 대목에서는, 이것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명문화되지 않은 이른바 공약이라는 것에 어떤 법적·제도적 장치가 연관되어 있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면 알려달라.) 어쨌거나 며칠 뒤의 이데일리 기사(http://www.edaily.co.kr/News/Enterprise/NewsRead.asp?sub_cd=HC11&newsid=01623606589626272&clkcode=&DirCode=00402&OutLnkChk=Y)를 보면 이 결정으로 인해 KT는 올해 와이브로 음성 서비스 가입자 목표를 크게 낮춰 잡았다고 하며, 그나마도 요즘 들어서는 ‘음성 서비스 계획 없다(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0906300264)’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지경이 되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들이 찾질 않으니 사업을 접는다는 것이 퍽 타당해 보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짜증나는 일 가운데 하나는, SKTKT가 와이브로를 마치 휴대전화 다루듯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정과 보조금, 할부 제도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멀쩡한 USB모뎀이나 단말기들을 자신들의 대리점이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사고 팔 수 없게 만들었으니 우습다. UMPC인 에버런의 경우, 하드웨어적으로 추가 모듈만 장착하면 KT의 서비스에 가입해 와이브로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제조사 측의 답변에 따르면) KT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내장형 와이브로를 쓰고 싶으면 KT 대리점을 통해 와이브로 모듈을 포함하는 모델을 완전히 새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냥 와이브로에 가입하면 USB 모뎀을 사실상 공짜로 준다. 그러나 내장형 와이브로는 외장형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며 분실 및 파손의 염려도 없다. 앞으로 와이브로 모듈 내장형 넷북이 출시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때의 모듈도 이런 식의 판매행태를 벌인다면 기존 넷북 사용자들은 황당할 것이다. KT를 통해 판매되는 제품은 할부가 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가격적인 장점도 별로 없다. 시중에 와이브로 장착 모바일 기기가 등불처럼 퍼져 있을 때 와이브로 가입을 고려할 소비자와 중도 해지시 위약금이 발생하는 최소 12개월짜리 약정에 서명해야 단말을 얻어 가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입을 포기할 소비자를 모두 고려할 때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입자 유치에 득이 되겠는가?

또는 이런 것도 있다. 과거 KT에서는 가입자가 해지할 때에 기존 단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분실 조치를 했던 것 같다.(타 블로그라 주인장분 허락을 얻기 위해 링크는 잠시 지워둡니다.) 여기서 ‘과거’라는 말은 내가 아직 겪지 못했기에 하는 소리다. 몇달 전에 웨이브2 모뎀을 쓰고자 기존 계정을 해지하고 다시 가입할 때(사실 단말 하나 사려고 계정 해지하고 재가입이라는 것도 웃기지만) 대리점 판매원도 분명히 같은 소리를 했었다. 그래서 내심 위약금 다 내고 ‘구입’한 기계를 다시 쓸 수 없다는 데에 분개하여 충분한 자료를 확보한 뒤 여러 소비자 보호 장치들을 이용해 항의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모두의 예상을 져버리고(?) 기존 모뎀의 사용이 가능해서 아직까지 사용중이다. 이것이 예외적인 경우인지, 아니면 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는 들은 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T 홈페이지의 고객정보에서 계정당 단말 정보가 출력되는 것을 보고는 혹 휴대전화의 IMEI 필터링 정책(한 번이라도 ‘개통’이력이 없는 단말기는 USIM을 꼽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희한한 정책)같은것도 있지 않을까 의심을 해 보았으나, 통신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신제품을 전혀 구할 수 없으니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소비자 불편을 야기하는 것들은 한둘이 아닌데, 명색이 USIM이라는 것을 SKTKT에서 같이 쓰지 못하고 단말기와 CM도 각각 써야 하는 점도 그중 하나다. 이런 점은 정부에서 표준화를 주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며, 기왕이면 국내 모바일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휴대전화도 그렇고 단말 경쟁력을 생명줄처럼 생각하는 통신사들의 신앙은 좀 뿌리뽑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도권에 머무는 나는 잘 못 느끼는 문제라 이제야 말하는 것이지만 와이브로의 커버리지가 EVDO나 HSDPA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전국망 구축이란 과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수도권에도 음영지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수도권에서는 와이파이+와이브로의 조합이면 상당히 쓸만한데, KTKC-1이나 SKTSCH-M830 같은 쓸만한 기기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죄다 와이파이를 빼고 나와버리니 문제다.


와이브로 아직 가망이 있나?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추측하기 어렵지만, 매일 와이브로 키워드의 뉴스들을 구독하는 입장에서는 별 기대가 안 든다. LTE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를 시작하면 LGT를 위시하여 각 통신사들은 너나없이 단말들을 들여오고 와이브로는 ‘팽’시킬 것만 같다. 물론 LTE가 더 거대한 커뮤니티의 지원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수도 있으나 내 입장에서는 이미 (기존망 대비)충분히 싸고 좋은 와이브로가 여러 가지 정책적 제도적 지원의 미비 그리고(최근의 아이폰 논쟁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 통신사들의 근시안적 태도와 편견 등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척 아쉬울 따름이며, 토종 기술이라고 하니 못내 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와이브로는 노트북 용으로도 좋지만 휴대전화용 데이터 전송망으로도 좋다. 1기가 요금제는 만원으로 오즈에 비하면 4천원이 비싸지만 그래도 33메가에 만원 하는 따위의 3G 데이터 요금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저렴하며, 양대 통신사에서 각각 만 육천원·만 구천원 하는 30G 요금제를 이용하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고(와이파이에 못 미치는 속도 탓에 그 이상 용량은 별 의미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현재는 단말의 한계로 휴대전화상에서는 리비전A3G에 비해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속도를 보이지만 앞으로 더 빠른 스마트폰과 MID폰이 등장하면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등에서 느껴지는 체감 속도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 통신망에 더해 와이브로가 가능해지면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물론 와이브로 때문에 와이파이가 빠지는 따위의 일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지만.

와이브로를 그리고 더욱 진화된 버전을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앞날을 지켜보는 마음이 썩 유쾌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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