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zer's Blog

Jun 19, 2005
Submitted by setzer @ 06-19 [09:35 am]
답답한 공간 안에서 답답한 현실에 대한 글을 쓴다는 건 불가능한걸까. 사실 현실 세계라고 단정지어지는 추상적인 거대한 존재와 살갗 안의 용서받기 힘든 존재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벌어져 있어서, 의외로 그것은 상당히 격리된 채로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처하고 있는, TV가 켜지고 부엌 싱크대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며 창밖으로부터 집 근처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란스러운 음악과 내가 교화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지고 있는 듯한 두사람. 아니, 정확히는 내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히 견뎌내기 위해 험담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둘러쌓여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 상황이 사실 좀 의심스럽다. 어디, 산뜻한 초원의 바람이라도 맞으며 느긋하게 써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풀숲의 작은 흔들림에조차 마음을 빼앗겨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도 그런 곳에서 문명의 이기들, 이를테면 펜과 종이, 나같은 경우에는 노트북이나 휴대폰, 이런 것들을 쓸 엄두도 내지 못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그런 곳에서까지 '그런 짓'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맞는 말이다. 분명히 맑은 공기를 마시러 올라간 산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건 우스운 행위이다. 사실은 어떤 이유로 그런 곳에 갔느냐에 달려 있다.

어쨌든 내가 여기서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나의 인내심, 정확히는 나의 몸이 전달하는 모든 불쾌감, 소음, 답답한 공기, 불편한 자세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어지러운 광경들이 뇌에 전달되어지고 받아들여지는 동안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하거나 무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를 위해 지금 나는 오피스텔 전체에 하나뿐인 작은 문에 기대어 있고, 그를 위해 전체가 유리로 채워진 벽에 바짝 붙어 설치된 선반 위에 올라가 앉아 있다. 그리고 나의 애마 -15인치의 대형 노트북-을 편히 사용하기 위해 식사시간을 위해 쓰여지던 작은 사각 탁자도 가지고 올라왔다. 사실 선반은 사람이 상까지 펼치고 ㅤㅇㅏㅈ기에는 매우 좁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노트북이 떨어져 버릴 수 있다. 그것은 조심해야 한다, 비싸기 때문에, 내 몸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관용적이다, 따라서 매우 타인에게 관대하고 이타적일 수 있다, 자신을 학대하는 행위에 대해 관대하므로, 이런 생각으로 빠져버린다. 혼란스럽다. 그것은 아마 TV에서 나오는 소음과 집 안팎에서 나오는 모든 소음을 무마시키기 위에 내 귀에 꽂아지 이어폰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단지 소리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일본 곡을 선택해서 무한히 반복하도록 했다. 그것은 최신형 MP3 휴대폰의 기능 중 하나로, 지난 2월쯤 샀기 때문에 어쩌면 최신이라 하기 어려울 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녀석은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 주고는 있으나, 그 좋아하는 일본 곡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버려 정작 모니터를 제대로 보고 생각할수가 없다. 모니터를 보고 생각하려 드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종이를 펼친 화가처럼, 아니면 가만히 생각이 떠오를 때 까지 기다렸다가 모니터를 펼치는 것이 나을까, 역시 이 모니터는 너무 어두워, 다른 기종을 살 걸, 지금 팔기엔 너무 늦어 버렸어,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 줄이면 더 곤란해져, 디지털 음원은 사람의 귀에 치명적이라던데, 뇌도 피곤해진다고 하더군, 하긴 이어폰을 꼽고 그런 생각을 하긴 너무 사치스럽지, 하는 생각들만 떠오른다. 사람은 어디에나 적응 잘 하기 마련이다. 결국 나는 이 모든 생각들을 집어치우고 오랫동안 구상하던 것을 떠올려내는 대신 되는대로 적어버리는데 손가락과 손목의 근력들을 허비해버리고 만다.

다소 뜻밖인 것은 이제 이 적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누군가 '그거 참 좋은 생각인데!'라는 답변을 기다려 볼 요양으로 인터넷에 올릴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나의 변화들에 대해 성의없고 지루한 관찰들과 그 결과로 일종의 편집병으로 보이는 판단들을 내리고 만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든/하지 않든 그것은 생소하고 놀라운 것이다. 나의 글들은 형편없다. 이것을 인정하는것도 반대로 추켜올리는 것도 내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올려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거나 혹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상상하는'것 또한 나의 놀라운 변화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무언가는 할 것이다. 단지 생각이 그러하달 수도 있다. 논리의 기반이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아, 컴퓨터의 논리는 그렇지 않던가. 디지털의 논리가 인간보다 뛰어나단 말인가. 절대성을 지닌 불멸의 네트워크, 그것이 지금 뜨거운 열과 함께 괴이한 소음을 내며 내 손 아래서 돌아가고 있다. 이제 과학이 발전하면 흑색의 멍청한 네모상자를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소음과 부피, 디자인 따위를 들어 현학적으로 이것을 비웃거나 할 수 없겠군. 최소한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 기계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이다. 이 기계는 수명이 짧고 과도하게 무거우며 배터리는 3시간도 가지 못하고 그 안의 소프트웨어란 온통 버그 투성이라 사용자를 분노하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절대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최소한 소프트웨어 만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과 접촉하는 유일한 통로인 피부처럼 하드웨어들은 녹슬고 부풀고 쓸데없이 전기를 낭비하여 결국 이 혼돈의 해악은 소프트웨어까지 던져진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해악이란 말인가, 불쾌하다. 그러나 이 모든 불완전함에 대해 나는 디지털에 대한 모든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쉽게 언급하고 마는 '아직까진'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즉 이것은 분명하게도 그러하다. 네트워크는 오프라인 세계 위에 있지만 아주 동떨어진 저 우주 너머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간단한 방법은 접속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주 많은 글들이 그 세계에 투입되었고 대부분은 무시되었다. 여기서 다시, 나는 '대부분은 대단한 것들이었다'그리고 '대부분은 주목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사실이다. 사실 세 번째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가 무엇을 보았는가를 추적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 확신하지 못할 부분에 대해 다소 희망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를 보기 위하여 스크롤을 올려 글의 서두를 보고는 '아'하는 탄성을 지를 뻔 했다. 펜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나의 입장에선, 좋은 키보드와 모니터, 좋은 타법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손끝에 밀려오는 유쾌한 통증을 견디며 천천히 나의 생각을 옮기고, 수정하고, 지우고 하는 작업들은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고립되어 있는 사람에게 컴퓨터를 권하면 그들은 할 말이나 어떤 할 일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누구나 펜과 종이를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을 준 손에서 넘어온 모든 것을 상자에 몰아 넣고 땅에 묻은 채 평생 꺼내보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단지 가능성만을 두고 보면 그들은 그저 주목하지 않은 것 뿐이다. 나를 보라, 그저 노트북을 켰을 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글줄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말 그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당신도 익숙해지면 그렇게 할 것이다. 단 먼저 타법을 좀 배워야 하는 수고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갑자기 어느날 이 세계에서 전기가 나가 버린다면 무슨짓을 할까 생각했다. 아마 나는 일단 이 노트북을 분해해서 거기에 색을 칠할 것 같다. 어쩌면 박살 내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늘 찢어져 쓰레기통으로 정확하게 던져지는 원고지와 힘없이 떨구어지는 펜, 얼굴과 몸으로 튀는 물감이나 찢겨나가는 스케치북 같은 것들을 그리워했다. 심지어 무대 위에서 철저히 박살나버리는 기타 같은 것들까지, 모든 것이 인간의 감정을 잘 견디어 내는 것 같다, 아니 인간 스스로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찢고 부수고 계속 해도 결국 돌아가니까. 반면에 나는 휴대폰을 던지고 노트북을 반으로 쪼갤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것들은 신용카드를 통한 할부 요금 납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물건이 아닌 것이나 다름 없는 불안감은 요금을 다 낸 뒤에도, 쓸모가 없어져 팔 생각을 하면 다시 생겨난다. 흠집을 내지도 못하고 보호 케이스를 비싼 돈을 들여 붙여줘야만 하는 것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생명이나 다름없는 가치를 잃어가는 그것들. 내가 열지 않았어도 언제나 기술이 발전하는 시간 덕분에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들, 그러나 그 모든 측면에서의 한계 효용이 완전히 제로가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를 계속 지탱해 나갈, 내 힘으로는 어떻게도 그 본질을 파괴할 수 없는 금속, 금속들. 나는 늘 터치스크린이 달린 태블릿을 가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태블릿도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몇번 던져서 끄떡 없는 노트북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지만 나는 그런 노트북이 나오면 매일 노트북을 던지고, 그 짓을 견딜 수 있는 노트북이 나오면 매 시간마다 던지겠지. 참 통쾌하기도 하겠다. 탓닛한의 가르침을 보건대 그런 폭력성의 조장이 결국 확장에 성공할까, 나는 생각한다.

'투쟁 영역의 확장'에 나오는 주인공은 나와 닮았다. 물론 내 방식대로 해석할 경우에, 우울증을 가지고 있고, 예측 불가능하고 -이것은 우울증의 증상일까?-... 물론 그쪽은 사회적 지위에서 볼때 나보다는 한참 위이지만. 게다가 그 작가는 전혀 내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척 희망적인 엔딩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옮긴이의 글을 보고 내가 완전히 혼동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읽혀진 이에 의한 독자의 보편적인 권리, 재창조의 권리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감히 입을 연다는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내가 다시 경계에 선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경계로 돌아왔다. 혹은 돌아갔다. 엔딩 장면의 거대한 숲,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완전한 빛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여겨진다. 그 빛 속에 추상적인 모든 것들이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그 안의 주인공은 죽음이나 삶이 없지만, 불멸이란 그때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삶과 죽음이 없는 상태, 그 상태에서 주인공이 다시 경계에 서느냐, 장애를 넘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이런 말들을 하며 순간 나는 리뷰랍시고 말도 안되는 사족들을 덧붙이는 평론가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Jun 14, 2005
Submitted by setzer @ 06-14 [05:28 pm]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에서, 범죄에 대한 부분에 눈길이 간다. 그것은 소규모 공동체의 일원들이 필요에 의해 긴밀하게 엮어짐으로써 범죄를 저지를 필요나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만, 일견 비슷해 보이는 분업과는 사실 크게 다른 형태이다.
예컨데 어떤 기업에서 a와 b와 c가 서로 도우면서 일은 한다고 생각해 보자. 엄격한 채용 규정에 따라 경쟁을 거쳐 선발된 세 사람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여 공동의 목표에 대한 생산성을 극대화 할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렇게 생산되는 가치는 그들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컨데 a가 (정리해고 등으로)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b와 c가 살아가는 데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b가 사표를 내면 채용 공고를 통해 다른 인원을 충당할 수 있으며, c는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상황은 범죄에 매우 취약하다. a는 b와 c의 작업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고 인간적으로도 어느정도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버리는 댓가로 그가 이제껏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융통성과 합리주의가 창궐하여 도덕성은 무너진 지 오래이고, 경쟁의 압박은 자꾸만 그를 충동질할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 요건은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오히려 그것을 지금껏 등장한 어떤 사회 구조보다도 극대화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제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a, b, c를 생각해 보자. a는 만약을 대비해 비축해 둔 수량의 식량 외에 다른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식량을 준비한다. 그것은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b는 목수인데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도 도맡아 한다. c는 의학을 공부했지만 a, b, c는 서로 필요할 때마다 도와가며 일을 한다. 그러나 경쟁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불만은 없다. 공동체 생활이 해가 더해지고 전통이 생길수록 점차로 일의 분량과 시간이 명확해지지만, 구성원이 변경되는 일이 생기면 유연하게 변화한다. 전통은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일 뿐 어떤 권위도 가지지 않는다. 점차 생활이 안정을 되찾으므로 각자 여가를 즐길 시간이 늘어나지만, TV가 틀어져 있지만 않다면 범죄를 저지를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Jun 05, 2005
Submitted by setzer @ 06-05 [05:22 pm]
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
이런저런 옷을 사느라 꽤 '큰 소비'를 하고 나서 이제야 드는 생각이다.
옛날에는 장에 쌓인 옷들을 다 내어 보아도 용도별로 두어벌.
작금에도 빨래후 말리느라 다른 옷을 입고 또 빨래 못할 때를 대비하여 여벌을 더 준비한다 해

도,
종류별로 세 벌 씩이면 족할 듯 하다.
헌데 서랍에는 벌써 상의만 열 가지가 넘고, 바지와 외투를 합치면 내 키와 덩치를 훌쩍 넘고도
족히 쌓이니, 그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까닭으로는 너무 낭비가 심하지 않은가.
사실 소비를 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옷만 입고 다니는 사람에게 보내는
사회의 약간의 경멸 어린 시선에 대한 고려도 되어 있었으나,
좀더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런 시선을 무시치 않고도
양복이나 개량 한복, 정장을 입으면 될 일이었다.
한편으론, 그저 자격지심에서
계속 옷에 지출하는 것으로 소비 능력과 옷을 고르는 안목을 높이고자 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저 소비 만능주의에의 부추김에 잠시 현혹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켠켠이 쌓인 옷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소유.

May 09, 2005
Submitted by setzer @ 05-09 [05:36 pm]
어두운 방안, 제단으로 보이는 탁자의 양쪽에 두 촛불만이 방안을 밝히고, 그 앞에 셜리가 하얀 테라(Terra)의 제식 의복을 걸치고 벽에 걸린 얼굴 앞에 꿇어 앉아 있다.

셜리 : 동쪽에서 온 사람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너즈의 일원이라고 하던데, 혹 그를 아시는지요?
태양 : 이너즈? 그것이 무엇이냐?
셜리 : 자칭 미래로 이끈다는 자들이지요. 우리의 미래를 위한 교리, 미래를 위한 투자. 징집, 교육, 확장, 탄압, 뭐 그런 것들을 한다고.
태양 : 이 나라에 그런것도 있었단 말인가. 좋은 징조로구나.
셜리 : 그렇습니까?
태양 : 암, 그렇고 말고! 정원사가 잔디만 자라라고 고이고이 다듬은 마당에 잡초가 피어나는 것 만큼이나 좋지 않느냐. 늘 얘기하지만, 모름지기 땅이란 속박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모든 물방울과 생명이 그 위에서 노니도록 좋은 바람만을 쐬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땅이고 그 힘이 다할 때가 있는 터, 이제 우리들이 나서 모든 것을 옮겨 그 땅이 좋은 때를 맞아 쉬게 하고, 다시 생명이 노닐 다음 날을 인력으로 앞당기는 것이다. 생명이 끊이지 않게 하되, 요 섭리 안에서 물결처럼 이어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소리도, 나라도 결국 그래야 하느니. 마땅히 제 몫을 붙잡느라 썩은 내를 백 세까지 풍기는 자들을 벌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셜리 : 옳으십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태양 : 그런데 그 이너즈의 일원은 왜 찾는 것이냐. 너의 일이냐, 테라의 일이냐?
셜리 : 테라의 일이옵니다.
태양 : 그러하냐.
셜리 : 그렇습니다. 감히 한마디 여쭙건데, 근래 남방에서 귀한 물건을 잃어버린 일을 아시는지요?
태양 : 남방이라. 두어달 전이던가, 손자비의 무리가 여수에서 단군수를 쓴 소고를 잃어버린 일이냐.
셜리 : 옳으십니다. 그 소고라면 남방의 제식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는 신물이온데, 그 일은 아무래도 이너즈와 관련이 있을 듯 싶습니다.
태양 : 단서가 있느냐.
셜리 : 그렇습니다. 그건 정확히 21일 전에, 제가 광성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요.

21일 전, 광성(光成).

녹색이고 적색이고 몽환적인 안개가 황망하게 깔린 저잣거리. 주점을 제외한 대개의 상점은 문을 닫았으나 워낙 큰 거리라 밤에도 짐을 진 자들로 많은 이들이 오간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부딫이기 일쑤여서 어떤 작자들은 성을 내며 싸우기도 하고, 한발짝 한발짝 조심히 내딛다 되려 제풀에 자빠지는 작자도 있다. 난데없이 고관 대작의 행차가 벌어져 사람들이 모두 비켜서는데, 막 지나치던 셜리도 그 바람에 옆에서 잠시 기다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고깔모자 : 모처럼 큰 위세로군. 어느 높으신 나리께서 이 밤에 이런 소란통을 지나시는고?
망태기 : 가마에 불경하게 흑목을 썼군. 저건 목항(木港)의 가마일세.
길라잡이 : (앞으로 나서며) 자자, 비키거라! 목상궁(木上宮)의 높으신 어르신께서 지나신다!
고깔모자 : (호위꾼들에 의해 밀려나며) 어구구.

느릿느릿 가마 등장한다. 호위무사 여럿이 검집으로 사람들을 제지하고, 가마가 막 무리 중앙을 지날 무렵.

망태기 : 저건 손가의 가마가 아닌가?
호위무사 1 : 뭐라고? (튀어나와 멱살을 잡아 올리며) 감히 뉘앞이라고 그런 말을 함부로 입에 주워 올리느냐?
호위무사 2 : (호위무사 1을 제지하며) 어이, 그만두게. 출발 전에 어르신 말씀 못 들었나.
호위무사 1 : (망태기 어른을 내려놓으며)에이, 조심하게!

가마가 지난 다음, 다들 너나할 것 없이 욕을 한다.

짐꾼 1 : 에잇... 저런 죽일 놈들.
상인 1 : 목항의 손가라면, 단군수를 쓴 소고를 잃어버린 자들이 아닌가?
망태기 : 필경 손자비나 손자영일텐데. 어찌 저리 당당히 지나가누.
고깔모자 : 아직 권세가 떨어지질 않았으니 광성이 성(成)으로 뵈질 않는 게지. 허나 이 안개가 계속되는 이상 목항의 권세도 곧 끊어질 게다. 뭐, 목상궁의 어르신? 목은 화에 약하다는데, 언제 화를 입을지 몰라 무서워서 잠은 어찌 들까.
상인 1 : 아니 이 사람들, 무서운 말을 하네 그려. (짐꾼을 재촉하며)자자, 어서 가자.

상인과 짐꾼, 짐을 다시 챙겨들고 무대를 빠져나간다. 셜리는 고깔모자에게 다가서 묻는다.

셜리 : 실례합니다만, 목상궁이 어디입니까?
고깔모자 : (셜리를 한참 위아래로 훑고는) 외지인이요? 어서 오셨소?
망태기 : (나서며) 길쭉하고 주름 많은 얼굴에 근심 걱정 가득하고, 둘러 덮은 가죽 밖으로 삐져나온, 털이 수북한 손은 범의 얼굴을 낚아챌 정도로 크고 억세지. 바로 그런 자를 남편으로 둘 북방인이 아닌가?
고깔모자 : 허어, 신기하군. (껄껄 웃고는 셜리에게) 과연 그렇소?
셜리 : (화가 난 말투로) 목상궁이 뭔지 모르시면 관 두시지요.
고깔모자 : (가려는 셜리를 막 붙잡으며) 아아, 우리가 잘못했소. 뭐해, 사과하게나! (억지로 망태기를 사과시키고는) 목상궁은 손가 사람들이 목성(木成)시절 중궁으로 쓰던 것을 고친 것을 말하는 거요. 목항 한가운데에 있지. 사실 다 불타서 몇채 남지도 않은 건물이었는데, 손가가 잘 나가던 동안에는 계속 이러저러한 자들을 끌어모아 집을 새로 짓고 재물을 끌어모아 궁으로 손색이 없었소만, 이제 그 재물을 모아 준 단군소고가 사라졌으니 저들도 바람앞에 등불이나 다름없소.
망태기 : 허긴 도적질이라도 당했으면 모를까, 제식중에 풍룡(風龍)을 만나 잃어버렸다는 게 말이 되나? 꽤나 실세이시니 그 아녀자들은 금이며 진주 따위는 귀히 여겨 그런 제에선 잃어버린 자가 없는 것을.

Submitted by setzer @ 05-09 [04:29 pm]
보는 눈 없는 곳에
고통 있고
절망 있고
사랑 있고
희망 있어
자꾸만 보이려 발버둥 친다

May 07, 2005
델리스파이스 5집,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1집 주문 취소하다
Submitted by setzer @ 05-07 [12:10 pm]
앗, 가수 여러분 미안해요... 몰랐는데 내가 LGT 사용자라, MusicOn에서 그냥 다운받을수 있더라구.
음원 사용료는 LGT에서 (당분간은)대신 내 준다 하니까, 정확히 가수 여러분께 수입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신경쓰는 것은 약간의 도덕과 합법적이냐 아니냐 수준이기 때문에... 앨범의 유혹 정돈 떨쳐 버릴 수 있었지요.

사실 새 책의 향기는 웹문서가 판치는 요즈음에도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음악 앨범에 대해서는 정 반대라.
집을 옮겨다니는 동안 여럿 잃어버리면서 가슴 아파하기도 했구...
전자화된 아이템들은 재생산에 비용도 들지 않는 주제에, 음악은 소프트웨어와는 다르게 라이센스 등록 따위도 없어서
오프라인에서 날려버렸다는 까닭에 다시 사야 하고... 이런거 너무 싫은데.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뮤직샵 만세지만... 역시 공개 음악이 있다면 그쪽이 더 좋겠지.
(그러면 뮤지션은 공연으로 먹고살아야 하나?)

-- 추가 --
다운받을때 보니까, mp3가 아닌 mp3.roz파일로 받아지고(뭐 자기들은 일반 mp3 플레이어에서도 재생 잘 된다고 우기겠지만), 미디어로즈가 music on manager와 함께 설치되고, 재생은 오직 다운받은 현재 PC에 한하며, 휴대폰 전송은 최대 3회라는군.
거기다 미디어 로즈라는 플그램, 자꾸 인터넷으로 뭔가 주고받고 있고.
이래서야, CD가 가지고 있는 자유도와는 비교가 안 되잖아.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는군. 자꾸만 독점, 보안을 위해 기반 아키텍쳐를 복잡하게 만드는 작자들.
쓸데없는 제약이 가해진 언어, 플랫폼, CPU, DVD, SD...
그리고 그 독점에 대한 집착의 결집체인 휴대폰.
맘에 안들어.

May 06, 2005
나는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Submitted by setzer @ 05-06 [04:48 pm]
가끔, 내 등에 날개가 달린 듯한 상상을 합니다.
만화에서나 나오는, 하얀 깃털이 가득 달린, 펄럭이는 날개.
그런데 이 날개란 게 사실은 그냥 장식에 불과한 것이어서,
지나치게 무겁고, 움직이기도 번거롭고 신발끈이라도 풀어지면 한참을 푸닥거리며 수선을 떨고 나서야 겨우 앉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몇번이고 이 날개를 잘라버리려 했습니다.
정말이지 이 날개때문에 매일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야 하고, 그로 인해 뒷목이 너무 아파서 얼마전엔 한의원에 가서 침까지 맞았을 정도니까요. 무지 아프더군요.
의사선생님이 뒷목을 보시고는 (날개를 달고다닌 것 치고는)생각보다 덜 굳었네... 하시는데 조금 엄살을 피웠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게다가 이 날개 때문에 전 다른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엔 축구도 농구도 하지 못했어요.
정말이지 장식용 날개는 너무 거추장 스럽다니까요.

그래서 그래서, 정말 눈 딱 감고 날개를 잘라내려고 겨우 '결심'하는데만도 한참 애먹었습니다.
자퇴하고, 휴학하고, 까닭없이 잠적하는가 하면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으면서 뭔가 기운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요, 나의 날개를 잘라버릴 용기 말이죠.
남쪽 끝에 가서 금오산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바다를 보며 외쳤습니다.
"바다야! 나는 날개를 잘라버리기 위해 여기 왔다!"
그러고는 그 절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바다로부터 뜻밖에 응답이 돌아 왔습니다.
"바보야, 너에게 날개가 있다면 왜 그걸로 날지 않는거냐?"
그 소리가 너무나 억울하여, 잔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몇번이나 몇번이나...! 나는 이걸로 날아보려고 했지만..."
"했지만?"
"고작 이런 날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야? 어떻게 저 비행기와 나란히 할 수 있단 말야? 부딫여 죽을 뿐인걸. 손가락질 받고 추락해버리고 말거야."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바람이 저 멀리 향일암에 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해 줍니다. 보니 나이 지긋한 두 사람이 망망 대해 뒤에 아주 나즈막히 보이는 섬을 가리키며 얘길 하는데, "저게 일본인가부다." 합니다. 호기심에 지도를 펼쳐 드니 그저 머지 않은 남해의 섬 중 하나라, 울상을 했는데도 쿡 웃음이 나옵니다.
바다가 말합니다.
"그럼 그 날개를 잘라버려라. 네가 원하는 비행기를 타라. 대항해시대가 끝났으니, 네가 어딜 원하든 그들과 같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딜 원하든?"
위잉 하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 넌 정말로 바보다. 너의 그 욕망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그리고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곧 바다는 바다로 돌아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멀리 운해를 보며, 이 비행기가 저 멀리 북극점까지 이어지는 것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피로에 지쳐 지하철에서 단잠에 빠졌을 때도, 버스에서도, 이 모든 것이 끝없이 이어져 내 피로가 다 풀릴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버스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지에 정확히 나를 내려 주었습니다. 사실은 내가 내린 것입니다. 선로는 계속 이어졌지만 그곳은 그다지 새롭지도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차피 돌아와야 한다면 하고, 나는 번거로운 것을 피한 것입니다.

기내의 진동으로 천천히 눈이 감겨지는 가운데 어렸을 적의 환상이 떠오릅니다. 일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한번도 가지 않은 거리를 쏘다니고, 밤이 되면 아쉬움에 눈물을 지으면서도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지평선에 꼭 다음에 넘어 보마고 손을 흔들어 보였던... 안돼... 이제는 그럴 시간이 없어... "휴대폰, mp3 등의 전자제품을 꺼주시기"... 공부를 해야 하니까, 더이상 그런 감정 따위엔... "잠시후 착륙합니다"... 안돼, 여기 더 있어야 해...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더 열심히 남들처럼, 여기서, 그렇지? 나는 계속 여기서... "손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손님."

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날개를 버리고 비행기를 타면 되는 걸까. 종착역에서 내려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 몸으로부터 퇴실 요구를 받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을까. 아니, 어느쪽이든 후회하게 되겠지. 그럼 그런 삶... 왜 사는 거야?

내려서는 계단에서 이미 짙푸른 어둠이 깔린 하늘과 마주쳤습니다.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뜻밖에도 어렸을 적 안녕을 고했던 그 지평선이 거짓말처럼 변함없는 신비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저기까지 날아가 보자. 계속 지평선을 향해서 날자...'

나는 등을 어루만졌습니다. 날개 같은 건 만져지지 않았지만, 어이없게도 나는 두 다리로 날아가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Apr 12, 2005
환상의 밤
Submitted by setzer @ 04-12 [02:18 pm]
어둑한 밤의 안개 사이로 네온싸인이 반짝인다.

쉴새없이 모아졌다 ㅤㅎㅡㄾ어지기를 반복하는 거리.

저것은 다가가선 안될 죽음의 도로다.

저들에 눈이 달려 있지 않아서 때때로 강아지와 고양이들은 치여 죽는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건 사람이 타고 있는걸. 게다가 그 녀석들은 눈도 좋고 무지하게 날렵하다고.

맛이 간 녀석들은 분명 상처받고 우울해 있거나, 술에 취했거나, 그런 걸꺼야...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어.



아주 오래전에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곳에 묻어 주었다고 했다.

지나던 오토바이에 알수 없는 집착을 그리 하더니, 결국 그로 인해 가버렸다.

과자를 가지고 희롱하니 나를 물어 사나움을 뽐내던 녀석이,

어느샌가 내 앞에 다가와 뒹굴고

언젠가 새끼까지 낳아서는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제 자식들이 사라졌다고 밥을 안 먹어 애를 먹인다더니,

나와 크게 다투곤 그대로 며칠 밤을 나가 돌아오질 않더니,

막 화해를 청하려 했더니 영영 집을 떠나버린 나쁜 자식.



집에 돌아간 것은 5년 만의 일이었다.

저 사람들은 누굴까. 왜 저렇게 알수없는 주름들이 잔뜩 피어 있는 걸까.

아무리 화장으로 덧칠해도 달라지지 않는 근심이 깊이 배여 있었다.

애써 웃음짓는 모양이 불편해서 예정보다 앞당겨 돌아왔다.

일이 급하다고 핑계를 대었다. 간섭할 권리 같은 건 모두가 잃어 버렸는데도.

왜일까, 눈물이 났다.

묻어왔던 과거도 꿈꿔왔던 미래도 안일해진 현재도, 이대로 마지막일까. 안녕.



나는 이 거리에 서 있다.

내 마음처럼 닳아 자꾸만 잃어가는 시력에게 너무나 자극적인 밤의 불빛들로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썬글라스를 낀 채 이 거리를 걸을 것이다.

축 늘어진 어깨엔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녹슨 심장을 조심히 담아 메고,

유난히도 씩씩한 발걸음은 타고난 천성이련만 종아리는 자꾸만 굳어 간다.

이 안개가 걷히면 마주 오는 차들의 불빛이 나를 비치고,

나는 계단을 걷는 광대처럼 그들을 지나쳐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영원히 걸어야만 하는 길인가.

이것은 생명의 도로인가. 생의 도로인가.



미래로 이어지는 저 혼탁한 거리 사이로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지평선이 있고,

그것이 도달해서는 뭘 해야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막연하게 먼 미래라면,

그 거리, 나는 함께 걷고 싶다.

비록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사람이 있으니.

나를 알아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면서.

저 다가오는 차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두 팔을 벌리고 거리를 걸어 본 적 있어요? -

Apr 10, 2005
Submitted by setzer @ 04-10 [09:15 am]
말야, 답답한 도시를 벗어난다고 하는건 어떤 의미지.
혼탁한 공기, 온갖 소음, 답답한 시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아닌가.
적응시켜 사용하기 위해 단순하게 사육된 우리에게,
자유와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는 건 무슨 까닭이지.

Apr 05, 2005
msn 탈퇴.
Submitted by setzer @ 04-05 [11:58 am]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리스트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

Mar 29, 2005
Submitted by setzer @ 03-29 [11:11 am]
소유. 그 어디에서도 너를 찾을 희망 따위 없다는 것에, 나는 웃는다. 이제야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 그러나 내일이 되면 모든 걸 잊고 다시 널 찾아 헤메겠지...

Mar 26, 2005
Submitted by Anonymous @ 03-26 [06:04 pm]
그를 부르는 소리엔 본디 넉넉하게 울리는 저음이 조심스럽게 억제되어, 열 살 남짓한 아이로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회한 같기도 했고 애써 환희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오른쪽을 보았을 때 늘 새것 같은 CO-EX3이 인공적인 푸른색으로 오후의 하늘과는 빛을 달리 내고 있었고, 그 빛을 받아 한껏 멋을 낸 듯한 그의 아버지가 다소 상기된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것은 유난스레 거대했다.

아이는 주저함 없이 달려갔다. 리안은 무릎을 굽혀 그를 꼭 품에 안았다. 아이는 오른쪽 귀를 댄 채 나지막히 물었다.

"어디서 왔어?"

익숙한 얼굴과 체형, 체취, 그리고 익숙한 저음을 내는 남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띈 채로 눈을 감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는 가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묻지 말기로 하자. 이제 그런건 의미가 없어..."

"당신도 날개가 있어?"

고개를 든 아이의 눈동자는 그를 닮은 눈동자를 두렵다는 듯이 찾아 헤메다가, 마주치자 심하게 요동쳤다. 아이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후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아이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여름 오후의 단비같은 산들바람이 때묻은 체취를 그의 얼굴에서 씻어내고서야, 아이는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ar 24, 2005
..
Submitted by setzer @ 03-24 [09:52 pm]
소유. Manalith/MainGate lv1. 남을 설득할 목적이 아니라면 너무 거창하게 의미화하진 마라. 걸으면 길이 생기고, 의미는 절로 붙는다.

Mar 23, 2005
ZOG(zog.co.kr)를 만나다.
Submitted by setzer @ 03-23 [09:52 pm]
슬프다. 오늘 또 한가지 너무 늦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어짜피 아주 새로운 기능이란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ZOG의 Cross Network이란 거창한 단어는 ZOG가 설치된 서버간의 통신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LBBOTP에 구현하려던 것... 예정대로 2월 초에 공개되었어야 하는건데.
Manalith 플랫폼도 블로그 수준으로 대폭 축소가 되었고...

하... 나 너무 바보짓 한다.

Mar 22, 2005
슬픈것.
Submitted by setzer @ 03-22 [01:19 am]
언제나 슬픈 사실은, 대다수의 멍청이를 대상으로 한 글에는 극소수의 앎체족만이 반박하여 잠재운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영웅심에 도취되어 있기도 하며, 단지 글을 볼 뿐 시대상을 이해할 줄은 모른다.

예컨데 와레즈의 폐해를 이야기하는데 가치있는 것은 정품을 산다고 주장하며 글을 비웃는 이가 그러하다.

Mar 20, 2005
내가 처음 거울을 봤을 때...
Submitted by setzer @ 03-20 [01:05 am]
그래, 머리 깎을 때 빼고는 거울을 보지 않았지.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고...

아마 5년 전이었을 걸.
처음 거울을 보았을 때... 나는 나에게 최소한 한 가지는 허락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게 그렇던데 말야. 남들은... 그런 것 같지도 않더라고.
절대로 변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 변할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지.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 피곤해져 세수를 하다 거울을 마주 대하면,
그땐 또 나 자신에게 욕 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한다...
거울을 보았기 때문은 아냐.
워낙 오랜만에 마주대하는, 그러나 잊고 싶은 악몽 같은 존재라서,
그렇게밖에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지.

때문에 자주 난 내가 누군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Mar 14, 2005
데이터 오염이란게 증말로 있긴 있구나...
Submitted by setzer @ 03-14 [08:16 am]
종종 파일이 사라지거나 깨지는 일이 있었다. 아주 가끔 에러를 내뿜고 멎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파티션은 자주 체크를 해 주어야 했다.
사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 FTP 서버의 행태를 나는 XFS와 느린 시스템 탓으로 돌렸었다.
EXT2, 3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을 뿐더러, 전에 누군가가 말하기를 'ext3는 파티션이 깨지지만, xfs는 깨지지 않을 뿐 파일이 파괴된다'라는 경험담을 올린 일이 있어서 나의 의심은 더해만 갔다. 더구나 9M/s의 무시무시한 접근이 P3 500 단일 CPU와 LVM에게는 벅찼는지, 접속 하나로도 CPU 점유율이 반 가까이 나갈 뿐더러 세개 이상 되면 언제 커널 에러가 터질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황이었다. vsftpd의 속도 제한을 통해 1인당 최대 2M/s로 제한하자 시스템이 정지하는 일은 사라졌다.
근래 들어 매일 파티션 체크를 하는 것을 잊고 있다가, 오늘 하드웨어를 교체하기 위해 시스템을 halt 시켰다. 그리고 하드웨어 변경 후 부팅. 난데없이 DriveReady SeekComplate Error와 DriveStatus Err : BadCRC 에러가 등장하며 최종적으로 DMA disabled 메시지와 함께 부팅이 안 되는 것이다. hda는 boot, 그리고 hda의 일부와 hdb 전체가 lvm1으로 묶여 있었고, 이것은 /home 에 마운트 되어 있었다. '그새 하드가 맛간거야?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불평을 쏟아내며 에러를 낸 hdb를 분리하고 리붓해서 lvm을 비활성화하고 리붓했다. 여전한 에러. 구글링을 통해 누군가가 해결을 보았다는append="ide0=noautotune"신공도 발휘해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이대로 볼륨이 날아가는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하며 하드웨어 벤더(WD)사의 디스크 체크 툴 ISO를 받아 구우려는 찰나, 기묘하게 꼬아진 IDE 케이블이 눈에 띄었다. 본디 PCI 스커지 카드와 스커지 하드와의 연결을 고려해 설계된 4개의 3.5인치 탈착 가능 베이에 IDE 하드를 넣으면서 마치 억지로 잡아당겨 끼운 듯한 이 케이블을 보자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심하게 꼬아진 부분은 slave, hdb쪽의 바로 이전이었고 옆의 놀고 있는 서버에서 손 닿는 대로 하나를 잡아 뜯어 꽂으니 말끔하게 부팅이 되었다. 허무.
일찍이 잘못된 랜 케이블이 테스터기를 말짱히 통과해놓고는 온갖 희한한 에러들을 만드는 원인이 되던 것과, 벤치마크 사이트에서 초고가의 쉴딩 IDE 케이블을 보면서 순전히 최신기술 중독자의 본능으로 주머니를 뒤지며 입맛을 다신 적은 있지만 이처럼 실제로 IDE 케이블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PC를 다룬지 근 10년만에 처음이지 싶다. 그럼 그동안의 데이터 오염(파일의 이름이 뒤바뀌거나 내용이 부분적으로 파괴되거나 하는)은 모두 이 녀석이 주범이었단 말인가? 곧 밝혀지겠지만 좋은 경험을 준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PC의 문제를 발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두려워지기도 했다.

Feb 28, 2005
Submitted by Anonymous @ 02-28 [02:42 pm]
나는 작은 거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심미경이라고 했다. 그저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둥그런 거울에 불과하지만 눈 앞에 바짝 들이대면 어디에 그가 있는지 빛이 내리쬐는 곳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멀고 아주 먼 그곳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피해왔다.

모든 것은 내가 초등학생 때에 시작되었다. 등하교때 언제나 지나야 했던 도로 위에 반듯하게 지어진 철제 육교 위에는 언제나 화가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하얀 수염을 내세우며 앉아 있었다. 앞에는 하얀 보자기 위에 이런저런 이해 못할 글귀들이 적힌 낡은 책들을 펼쳐 놓고 '사주, 궁합, 관상'이라고 쓴 안내판을 곁에 세워 두고서 말이다. 나는 평소 그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 역시 나를 오가는 사람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을 터였지만, 초등학교 3학년 1학기의 첫 기말고사가 끝날 즈음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그때 나는 시험 성적을 죽을 쓰고서, 진즉에 1등을 할 테니 아파트 앞에 새로 생긴 경양식 집에 데려가 달라고 어머니에게 우겼기로 도무지 집에 들어가 낮짝을 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물론 시험 성적이야 한참 뒤에 나오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감출 것이며 어떻게 거짓말을 할 것인가, 혹은 솔직히 털어 놓고 다시 그 집에 돈까스를 먹으러 가자고 우길 것인가는 한참 고민해야 했던 일인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실내화 가방을 흔들며 유난히 텅텅 소리를 내며 철판 위를 걷는데, 그 모습이 눈에 띄었던지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일찍이 모르는 사람 말은 듣지 말라고 배웠지만 매일 보던 얼굴이라 그런지 별 거부감이 없어 쪼르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수염이 좀 더부룩하게 있었지만 육교 위에 하루내 쪼그려 앉아 있는 신세임에도 체크무늬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 입어서 그런지 제법 주름이 적어보이는 얼굴에는 그래도 점인지 검버섯인지 모를 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그는 제멋대로 부른 주제에 혹시라도 생길 지 모를 상대방의 거부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써는, "너 왜 오늘따라 그리 기운이 없냐?" 하고 물어 보았다.

별로 대답하기 싫거나 좋거나 하는 감정이나 계산이 없었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과장하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이런저런 과장을 늘어가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실 특별히 거짓말을 한 것도 없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는데 너무 속상하다는 둥 이래서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둥의 조금 어른스런 표현들을 섞었을 뿐인데, 그것은 드라마나 만화에서 따 온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들이었음에도 지금 생각하기에 어색함이 없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는 자기 옆에 자리를 만들어 책으로 쌓은 의자 위에 나를 앉혀서 한참 이야기를 들어 주고는, 난데없이 나의 생년월일을 묻고는 다시 생시를 물어 보았다. 그러나 태어난 시각 따위 내가 외우고 다닐 리가 만무해서 어머니께 묻고 오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며, 가려는 내 손을 붇잡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다시 내 손을 펼쳐 쥐고는 손바닥에 새겨진 주름들을 지그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몇번 혀를 차고는 "x가 있구먼."하고 말했다. x라고 한 것은 그 단어가 워낙 어려워서 무엇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꽤나 심각해 보이는 그의 표정만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는 한참을 더 들여 보다가, 펼쳤던 내 손을 다시 쥐어 주고는 그대로 꽉 쥐고 한참동안 내 두 눈동자를 바라다 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먼 바다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웬지 싫어져 손을 뿌리치자, 그는 한 손을 놓아주고 한 손은 그대로 잡은 채로 나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응,응. 별일 아니야. 별 일 아니고, 네가 이제 열심-히 하면 다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마치 자신에게 타이르듯 말을 하고는, 다시 "너에게 선물이 있으니, 아직 가지 마라" 하고는 뒤를 돌아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큰 가방 속을 이래저래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쥐고는 돌아 보았다.

"이게 심미경이라는 거다. 이거 너 해라."

어느샌가 내 손에 쥐여진 것은 은색으로 빛나는 볼록하고 둥그런 요요 같은 것이었는데, 너무 얇았다. 뒤집어 보니 그곳엔 거울이 있고, 별안간 뒤에 서 있던 해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그것을 하늘로 돌려 버렸다.

"눈에 대 봐라."

그는 아리송한 지시를 했다. 내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그가 내 눈에 거울을 가져다 대었는데, 전혀 의외로 거울이 없는 듯이 투명해서 뒤가 비치기 시작했는데, 광경이 마치 아버지가 사우디 갔을때 썼던 썬글라스를 끼고 있을 때와 비슷했다. "우와"소리를 내는 동안 그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는데, 한순간 나는 '앗'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춘 채로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대답하기 힘들게도, 그것은 그동안 전혀 내가 상상하지 못한 매우 이상한 광경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 어딘가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뒤늦게 본 것이지만, 그건 어느 게임에서 '홀리 스트라이크'따위의 마법을 사용할 때와도 비슷했고, 영화속 텅 빈 폐가에 뚫린 구멍으로 빛이 새어져 들어오는 것과도 비슷했지만 어딘가 좀 더 이질적이었다. 뭐가 묻었나 싶어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고 문질러보기도 하는데, 유난히 저 도로를 넘고 산을 넘은 어딘가만 그러했다. 나는 그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신물이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다. 지금 보이는 건 너와 연결된 다른 사람이고. 사실은 서로를 잡아당기는 인력이나, 서로에게 빨려 들어가는 영혼이나 운명 같은 것이 보이는 거지. 저 도로 너머라면 가까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얼마나 먼 지 알 수도 없다."

그는 거울을 내 눈에서 떼어 주고는 내 두 손을 쥐고 말을 이었다.

"내가 하는 말 잘 듣거라. 저 밝은 곳 너머에 있는 것은 아주 흉악한 요물이다. 아주 나쁜 것이라. 넌 절대로 저기를 가까이해선 안 된다. 알았냐? 너에게 뭔가 보인다는 것은 너가 정말 아주 안 좋은 운이라는 거다. 넌 절대로 저기 가지 마."

하고 신신 당부를 하고서는,

"에이구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ㅤㄷㅚㅆ구나. 엄마 걱정하시겠다. 그만 가 봐라."

하고 떠밀어 버렸다. 그대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 뒤로 나는 호기심에 입방아를 찧을 만 한데도 어쩐일인지 책상 및 장난감 바구니에 넣어 두곤 누구에게도 보여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커가면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집안사는 많은 것이 변화해서, 두 누나들은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2년 가까이 별거중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누나들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 누나는 곧 휴학을 하고 내려왔다. 뭔가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아무도 나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말도 안 했고 도시락은 언제나 따뜻하고 맛있었다. 어느날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공포를 견디지 못한 채로 내가 중학교를 그만두자 마치 우리 집 전체가 길고 긴 나락 속으로 떨어지는 듯 했다. 생활이 지긋지긋해 진 나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구하고 기차를 기다렸다. 오전 6시. 이후 2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누나는 나를 공항으로 데려갔다. 태어나서 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집에만 틀어박혀서인지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때 나는 호주머니에 거울을 넣고 있었다. 바로 전날 집에서 제일 크고 들기 편한 농구공 가방에 이런저런 것들을 채워 넣다 문득 이 거울을 떠올리곤 찾아 꺼내어 호주머니에 밀어 넣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왼쪽 눈 가까이에 붙였다. 다가갔다. 그것은 서울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비행기 내의 압력 때문인지 왼쪽 반신에 쥐가 나기 시작해 착륙 전까지 가만히 눈을 붙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Feb 20, 2005
잠이 와요 하늘이 내려와요
Submitted by setzer @ 02-20 [05:32 pm]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겨우 누운 자리에
오늘 하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흘러간 시간들이 그리워
눈을 감지만 쉴새없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아
쓸모없이 보채기만 하는 하품이 화가 날 뿐
이럴땐 누군가 망치로 쾅 내리쳐 주었으면
망치로 쾅 망치로 쾅
망치로 쾅쾅쾅쾅쾅

무대 위에 올라선 Super Star
하늘 가득 반짝이는 Flash
귓가를 감싸는 셔터 소리도 이젠
다시 보지 못할 듯이 그리워 서
아직 못다한 내 말을 하네 에에
다시 꿈꿔왔던 말을 하네

벌어진 눈의 틈으로는 빛이 보이지 않았어
흩어진 의식을 모아 일으키려고 기를 쓰지만
이미 몸에서 멀리 도망쳐버린 나는 좀더 하늘을 날고 싶어
사죄의 의미로 얼굴에는 미소를 띄워 두었지

Feb 19, 2005
Submitted by setzer @ 02-19 [10:36 am]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그저 마주 보고 어색해하던 경험이 있니?

나는 그럴 때는 왜 이렇게 아는 것이 없을까 하고 스스로를 책망해.

좀더 많은 것을 보고, 접하고, 듣고, 읽으면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약간의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대했는데, 그 이후는 너무 쉬웠어.

모든것이 너무나도 자극적이었거든.

어느샌가 빛나는 스크린에 두 눈을, 끊임없는 지껄임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에 귀를,

달고 쓰고 맵고 짠 것에 두 입을 맡기고 손으로는 떨리는 허리를 짚고 있었어.

가방 가득 끊임없이 돈을 넣고 빼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써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걸로 된 걸까? 이제 나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이제 그만... 난 하고 싶은 게 있어...

하지만 혈관이 뛰는 것이 느껴지는 두 눈의 시력과 집중력은 형편없이 떨어져버렸고,

그나마도 움직이는 발광체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응시하지.

스피커의 울림에 익숙해진 귀는 사람의 말은 잘 듣지 못해.

두 손과 내 몸 곳곳의 레이아웃과 매커니즘은 돈을 소비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고,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두뇌는 한껏 자극받아 부풀어 있는 경쟁심과 온갖 물욕에,

충족시키지 못하는 몸 자신을 탓하며 무능력하게 돌고 있을 뿐이야.

이대로 멈추어버리면 이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이대로 나아가면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리는 고통에 휩싸이게 되겠지.

하지만 돈이 만들어 내는 환상과 내가 의도하지 않은 욕망에 휩쓸려버리는 건 싫어.

난 내가 꿈꿔온 걸 하고 싶어. 조금은 외톨이가 되더라도 괜찮아.

나 자신의 구도자가 되어야 하는 나이기에, 이겨낼 수 있을거야.

기계주의자
Submitted by Anonymous @ 02-19 [12:36 am]
너가 남긴 모습 미소 향기 그 모든 것에
어느 누구를 만나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어
껴안아 입을 맞추며 너를 그리며
그저 너의 분신일 뿐인 사람들을 사랑해

나에게 무한을 보여줘
영원히 살고 싶어 네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 속에서
두려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게

어떤 말과 몸짓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던 너를
끝없이 가슴에 품으며 걸어 온 지난 거리
잊어버리자고 다짐했을 때 볼 수 있었지
정처없이 찾아 헤메었던 너의 그림자

나에게 미래를 보여줘
영원히 살고 싶어 네 안에서
멀리 이어지는 대지 위에서
잃지 않게 서로 안을 수 있게

Feb 10, 2005
너는 어떤 삶을 살거야?
Submitted by setzer @ 02-10 [07:06 pm]
만약에 만약에. 너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아... 그게 그렇게 힘든 거였어? 하여튼.)
너는 어떤 삶을 살거야?

나는 말이지.
언어의 마술사가 되고 싶어.
노래 가사도 쓰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내 상상력을 마음대로 펼쳐서, 그 상상의 세계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그러러면 칭찬 많이 받아야겠지? 그래... 받고 싶어.

나는 말이지.
프로그래밍의 대가가 되고 싶어.
내 상상력을 마음대로 펼쳐서, 그 상상의 세계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그러려면 좋은 거 많이 만들어야겠지? 그래... 만들 거야.

그런데 이런 것들은 나의 삶과 썩 무관해 보여...
어떻게 살든 나의 시니컬함, 센티함 같은 것들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겠지.
진지하게 쉽게 편하게, 그러면서도 남들 상처 안 주고 좋은 평가 받으면서 완벽하게 살고 싶은 건.
안 되는 걸까?

아이바 코우지.
나도 지금 여기서 웃고 싶은데. 웃고 싶은데.
남들에게 칭찬 받지 못하면 웃지 못하는 거야?
나는 좋은 소리 들을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자신이 없어?)

아... 이쯤에서 멈출까.
하루 내 써 본 적도 있는데 끝나지 않았어.
체력의 한계로 끝이 났지.

생각 났다.
난 말이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웃고 싶을때 웃고, 춤추고 싶을 때 춤출 수 있으면 그걸로 좋아.

접착제
Submitted by setzer @ 02-10 [08:30 am]
언젠가의 일이었다
나는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체온을 그저 따스하다고만 여겨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그것이 쾌락이 되어 버렸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맞닿아 뒤엉키려는 흐름 가운데 저항해야 했다.
요란한 몸의 움직임과 달콤한 속삭임 가운데
나는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이 남을까 하고 생각했다.
콤플렉스 덩어리. 보기 흉한 몸뚱아리와 머리통.
나는 이것을 거부하면 무엇이 남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큰 파도가 일고 있는데,
바다에 떠 있는 모든 배를 구할 수는 없을까.
무사히 돌려 보내고 싶어.
원점으로, 원점으로...

나는 결국 거부하고 말았다.
두려움, 콤플렉스, 자괴, 자위, 자멸...
돌아가기 위해 지껄이는 많은 말들은 수다에 불과했다.
미안해하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기뻤다.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아.
너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사실은
하늘에 보이던 너의 얼굴
손에 닿은 너의 몸이 차갑다고 느끼는 순간
이 장난으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길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왜 그렇듯 담담하냐고 물어보았을 때
장난감이었던 나는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Feb 08, 2005
상상
Submitted by Anonymous @ 02-08 [03:42 pm]
부드러운 산의 능선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깔리네
대지 곳곳에 휘말리는 어둠과의 크고 작은 긴장은
이슬을 맺히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지
낮게 내려온 구름이 안개 되어 호수에 뒤덮일 때
두근거림이 지하를 뜨겁게 달구고
마침내 산이 무섭게 용암을 내뿜으면
검은 연기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타오른다
하지만 다시금 하늘이 파랗게 찾아오면
메케한 냄세와 더러운 자욱에 초목은 질식하고
악취가 만 년을 전하는 데 강과 내는 깨끗하게 흐르니
한낮의 대지는 부끄러워 어디 하나 붉지 않은 곳이 없다

밤을 보내며
Submitted by Anonymous @ 02-08 [03:13 pm]
아스라이 떨어지는 별의 반짝임이
너의 눈빛 같아 부끄러웠어
그런 밤엔 모든 일이 신경쓰이지
나의 고통을 먼저 알아 주길 바래
슬퍼하고 울고 괴로워하면
높이 걸린 얼굴은 스쳐 지나가고
새벽 창가에는 짜증 섞인 성에가 낀다

지평선을 감춘 안개가 포근시원한 것처럼
혼자된 외로움이 편한 걸지도 몰라
처음 대하는 사람에 놀라 반가워하지 못한 야생 소년에겐
아직 갈 길이 멀다-

Feb 03, 2005
놓아 버린 시간
Submitted by setzer @ 02-03 [03:29 pm]
눈을 감고 꿈꾸듯 세상을 움직이려는 미약한 손짓에
갈려진 바람은 곧 소멸하여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지쳐버린 소년이 한탄스러워할 정도로 작은 몸은
맞지 않는 큰 손발과 머리에 작은 의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찬 바람에 웅크린 몸은 성장이 억제될 정도로
가혹했던 시절의 자신이 그저 후회스러울 뿐이라면
공허한 육체의 어느 틈새에서도 날개터는 찾을 수 없다
스스로를 찌를 칼과 누래진 혓바닥만으로 나아가는 어느 미래에
나그네의 고뇌에도 까닭없이 모래 바람은 풀어 닥치고
저무는 날은 길 잃은 모자에게도 어둠을 내린다
기대하지 않아도 먼 동쪽으로부터 피어나는 희망을 알기엔
불타버린 구름의 재가 별이 되어 하늘에 박힌 것이
못내 슬프기만 하다

Jan 30, 2005
하나뿐인 세상을 날아오르다
Submitted by setzer @ 01-30 [12:07 pm]
메이, 내가 그 문을 처음 열었을 때
좁은 방은 쏟아지는 빛들로 가득 찼고
허무하게 사라진 뒤로는 냉정한 바람이 불어왔다

메이, 내가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네가 끊임없는 목소리로 인도하지 않았더라면
지평선 어딘가 다른 의지를 따라 사라졌겠지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되 있는
꿈에서의 입맞춤을 그리고 있어
하나뿐인 그 순간의 미소를 되돌리기 위해
감정과 이성의 마법으로 역풍을 맞아 나아가

한순간 허물어진다고 해도
간절한 기원으로 일어설 것을 믿으며
발자욱이 없는 하늘로 떠오를 날개를 만들고서
땅을 박차 올라 이제껏 없었던 자유를 만들었다

만났어 피폐해진 너의 얼굴에
믿어왔던 세상에서 다시 나눈 입맞춤
이어지기 위한 어떤 것도 없는 자유지만
너를 되찾아 행복해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부서진 몸과 함께 추락하는 반짝임은 뭐지
메이, 너도 알고 있었어?
영혼으로 바래 온 순간은 사라지는 무지개 같아서

오래도록 전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어둡고 혼탁한 시내를 건너던 마음의 자국이
자꾸만 축축한 타락으로 스며들어
깃털 하나까지 앗아가는 잔인함에 맞섰지만

그거 알아?
한순간 보란 듯이 웃었어
그려오던 무한에 도달했을 때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미소지었어

Submitted by setzer @ 01-30 [07:43 am]
컴퓨터는 아무리 두들겨도 나의 향기가 묻어나질 않아.
내 손이 끊임없이 부딫여 온 부분조차 고작 칠이 벗겨지고 까끌하던게 매끄러워졌을 뿐이지.
그런걸 보면 정말 견고한 물건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돼.
모든 게 꽉 차서 내가 손 볼 곳이 없는 거야.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말야.
돈을 쓰지 않으면 바꿀 수도 없고, 칼을 대려면 그만큼 희생해야 하지.
그런 면에서 소프트웨어는 참 좋아.
헛점이라든가 버그 같은 게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코드에 나를 섞을 수 있어.
코드가 공개 된 녀석이라면 좀더, 훨씬 많이...

Jan 29, 2005
이글루스에 블로그 개장.
Submitted by setzer @ 01-29 [01:36 pm]
여긴 사람 손길이 너무 안 닿아서 그쪽에 만들었습니다.
기념으로 2004년 후반부터 쓴 가사들을 모두 2005년 버전으로 만들어 올릴 예정.
여기만 오는 분들은(어? 있었어?) 지루하시겠지만 계속 지켜봐주시라.
그럼, 꾸벅.

Submitted by setzer @ 01-29 [10:12 am]
한순간 다가온 찬란한 희망처럼
어느새 어둑해진 밤하늘의 꿈이
기다림에 지친 미래를 비웃으며
삶과 시간을 앗아만 가고

매일 눈뜨면 생기를 잃은 너의 얼굴에서
털어낸 먼지가 부유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어느 순간 느껴질 새벽의 한기를 두려워않고

햇살이 인도할 안개 너머로 나아갔지
그 빛이 밝혀줄 그려왔던 미래를 쫓아
높이 불꽃을 쏘아 올렸지
태양 따위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알수없는 이유로 집착하는 짐승처럼
변함없을 마음의 어렴풋한 꿈마저
나태함에 익숙해진 너를 조롱하며
용기도 자존심도 사라져 가고

매일 달리며 소중함을 잊은 그 한숨에서
쉴새없이 뛰노는 심장의 치열함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캐물을 이유마저 잊어버리고

대지가 이어 주는 길을 따라 나갔지
공전하는 세상의 꼭대기를 찾아
누구도 가지않은 길을 만들었지
바다를 만나 끝나 버린다고 해도

Jan 27, 2005
Submitted by setzer @ 01-27 [03:14 pm]
흰 옷을 입고 날개를 단 채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두려워
도와달라고 소리쳐 불러보지만 지켜보는 인형들은 말없이 미소지을 뿐
순간 순간마다 뒷걸음질 치면서도 얼마남지않는 벼랑끝 저 어둠으로
이제는 벗어나야해 궤도를 벗어나는 별처럼 사라져 살고싶어-

거울속에 그리던 어엿한 나로서도 괴로움을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엔 차라리 잠들어 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그래도 흘러가겠지 잊혀진 사람들의 시간 조차도 다가가겠지
내가 모르는 채로 쌓인 먼지와 하얗게 세어 버려 마지막 기원마저

흰옷을 입고 날개를 달고 싶었어 그러는 것처럼 그래왔던 것처럼 꿈꾸고 싶었어
별이 떨어지는 바다 위의 어느 마지막날 움직이는 인형들은
사람이 되어 저 파도 위를 날아가줄까 그렇게 기원했는데
아직도 내게 없는 향기가 저 바다너머 도망칠수밖에 없는 꿈을 만드네

Jan 24, 2005
이젠 내일을 위해 잠들고 싶어
Submitted by setzer @ 01-24 [04:50 pm]
매일아침 눈을 떠도 그저 어둠 뿐
먼지에서조차 삶의 증거를 잡아 보려고 애쓰지만
그저 기계처럼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 다닐 뿐
꿈도 미래도 그저 스쳐가는 바람 처럼 막연할 뿐

눈을 감아도 너무 밝아서 잠들 수 없어
빛과 그림자 태양도 달도 아닌 이상한 존재가
이 공간을 끈질기게 비춰주고 있어
그리고 말하고 있어 잠들어 다시 깨어나라고

이런건 싫어 간절하게 전하는 메시지
너에게로 가는 나의 마음 따위는 무시된 채
흘러가는 시간 회전하는 우주 무책임한 웃음 따위
이제 지겨워 그만 너에게로 가고 싶어 알고 싶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해줘

십자가를 지고 걸어 다니는 망령들 사이로
너도나도 오른손을 들어 위태로운 모습으로
짓뭉개진 공기의 비명을 들으며 나아가지
달리는건 내가 아니지만 가득한 적대심에 숨이 차

가까스로 내게 익숙한 자릴 찾아 앉지만
여긴 불편하고 온갖 악취가 뒤섞인 너의 자리
애써 당당하게 웃으며 타일러 길들이려 해도
어색하게 비어진 몸엔 어느 의자도 맞질 않아

이젠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해도 멈출 수 없어
시작해버린 길 열병과 눈물이 전부라고 해도
회색 물감 덧칠한 하늘로 사라지는 연기를 마시지만
아직 웃을 수 있는 얼굴을 두터운 솜이불에 묻으면
자꾸만 내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야

Jan 22, 2005
Submitted by setzer @ 01-22 [09:20 am]
악몽을 꾼 날의 아침에
잠에서 깨어 천정을 올려다 보았지
눈이 내리듯 휘날리던 먼지가
환한 햇살 아래로 제멋대로 춤을 추었어

시계를 보고서
다급해진 마음의 한순간의 머뭇거림
이제는 없어 그렇게 타이르지만
가는 손가락엔 쥐인 이불을 부숴버려

난 왜 아직도 그대로일까
(아픔 조차 느껴지지 않는 작은 성채를 쌓아 두고)
왜 아직도 여기 홀로 있는 걸까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감춰둔 까만 커튼 뒤로)

깨어질듯 아파오는 눈가를 비비며
가까스로 오늘을 다시 살아가
내일 같은건 보이지도 않아
오늘 밤 다시 바라게 되겠지

죽거나 잠들거나 꿈꾸게 해주소서 라고

Jan 19, 2005
Submitted by setzer @ 01-19 [12:02 pm]
싫어, 겨우 그깟 일로 웃지 마.
미개인 같잖아. 이웃 나라에서는 그보다 더한 것도 하는데...
질리지도 않냐. 나는 슬슬 이 땅이 신물이 난단 말야.
잘났다는 사람들이 만든 것들 다 봤지만 역시 부족해...
이 땅의 한계야. 어쩔 수 없는.

그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떠나갔다.
이 땅을 저속하다고 욕하고 혐오하면서 등진 걸까?
아니, 녀석은 신비로운 희망을 가지러 떠난 것일 게다.
언젠가 자신이 돌아올 날에 이 땅에 뿌릴 씨앗을 가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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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8-12-30 10: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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