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로서의 2011년 계획 개인

올 해는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작년까지 일하던 웹 에이전시를 그만두고 한 벤처 회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대기업의 사이트를 만들던 전 직장과 달리 여기서는 회사의 서비스 사이트 하나만 다룬다.

생각해보면 전 직장은 참 좋은 회사였다.
근무 여건도 좋았고, 연봉도 괜찮았고, 회사 사람들도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사회적 기업인지라 내 천성인 사회기여에 대한 강박에서도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웹 에이전시인지라 개발 환경이 고객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단점이 있었고
(그래서 자체 서비스를 열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고... 나도 거기에 일조했다.)
당초 들은 것과 달리 MS 기반의 개발 환경에서 도무지 벗어날 가망이 안 보여서 그만 두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망설여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개발자 중에는 '환경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일견 바보같아 보일 수 있다.
능력있는 사람들과 좋은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을
의욕이 안 선다는 이유로 휙 접어버리다니...

물론 나도 그 안정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몸이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 극한의 슬럼프에서
어떻게든 예전의 생기를 되찾아 보려고 별 짓을 다 했었다.

최신의 플랫폼과 개발 방식을 갖다 써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문서화 해 보기도 하고,
회사 사람들과 장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기도 하고,
후임을 성장시키는 데 몰두해보기도 하고,
웹서버 외의 것들을 오픈 소스 기반으로 구축해보기도 하고,
아이폰과 맥북을 사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려고 한참을 공부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안 되더라.
개발 환경을 두고 말하자면,
버추얼 박스에 데비안을 깔아놓고 몇몇 어플리케이션을 그 쪽으로 옮겨 보았었는데
그냥 사서 불편한 일을 했을 뿐, 아무 도움도 안 되었다.
그나마 몇년 전에는 데비안에 이클립스로 asp 편집을 했는데
닷넷으로 오니까 차마 일반 에디터로 aspx 파일을 수정하는 뻘짓은 할 자신이 없었다.
(모노 디벨롭도 뭐 VS에 비하면 일반...)
리눅스 계열로 구성한 젠서버나 KMS, 파일 서버 등은
회사에서 윈도/리눅스 두 플랫폼을 가지고 갈 때에
장기적으로 발생할 인적 부담을 생각하면 지속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이폰 개발은 업무에 쫓기다가 가뜩이나 피로한 육신에 생채기만 낸 꼴이 되었다.

내 생각에 나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 하다가는 나아가 즐기게 되기는 커녕
오히려 잘 하지도 못하게 될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나는 내가 아주 별나서 이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전에 모임에서 뵌 고급 개발자 한 분이 내 얘기를 듣고
'그럼 빨리 바꿔야겠네, 하고싶은 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면서
본인의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을 듣고 조금 위안이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별난 사람이 두 명이 된 걸 수도 있지만 ㅋ

어쨌든 그래서
올해는 ASP 배운 지 만 10년만이 되는 기념으로(?) MS 계열 작업을 청산하려고 한다.
VB ASP 닷넷 실버라잇 윈도서버 MSSQL 오라클(응?) 등등...
(이미 VB와 실버라잇은 백만년 전에 다 까먹었지만 ㅡ,.ㅡ)
뭐 새 회사에서도 당분간 윈도 서버에 닷넷 기반에서 작업을 하게 되지만
올 하반기에는 리눅스 서버에 PHP와 파이썬으로 이전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통상적으로 닷넷에 대응하는 거라면 자바겠지만
여기 인력이 턱없이 적고, 내 경험도 부족하고 하기에
소규모 개발집단에게 적은 학습량으로 최상의 생산성을 보장한다는 쪽을 택한 것이다.
옮기고 나면 개발 환경도 완전히 리눅스로 바꾸고(만세!)
이런저런 오픈소스 프레임웍을 도입하면서
버그잡이를 필두로 개발 및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사이트 핵심 부분을 제외하고 소스를 재오픈 하는 형태로
여러 모로 커뮤니티에도 기여해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파이를 키워 추후 인력 수급에 기여한다는
위엄 쩌는 목적도 분명 존재한다. 크흐..)

다만 새 회사에서는 개발 외에 기획적인 일도 상당히 감당해야 하는지라
내 생각만큼 진도가 안 나갈지도 모르겠다.
여기선 위에서 떨어지는 일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결합하고 효과를 거둬야 하는 일이 훨씬 많을 예정인데,
다행히도(?) 이 부분은 개발 기술에 국한되지 않은 회사 온라인 사업 전반에 대한 것이고
덕분에 많은 걸 배우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밤새면서 글을 쓰니 가물가물하네.
어쨌든 화이팅 하자. 올 한해.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말자.
내가 뭐라 해도 멈추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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