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초 여행 첫째날 개인

떠나기까지

2012년 8월 초, 찌는 듯한 무더위를 피해 피서를 가게 되었다. 고향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가장 최근에 1박 이상의 여행을 다녀온 것이 작년 8월 말이니까, 거의 1년이 되는 셈이다. 원래 초가을에 여행을 가려 했지만, 회사 사정 덕분에 좀 앞당겨졌다. 덕분에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근접하는 끔찍한 무더위, 어딜 가나 북적이고 비싼 초성수기에 여행을 가는 고생스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엔 이 불볕 더위 때문에 국내 여행은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난 걷기를 좋아하고 운전도 하지 않는데, 날씨는 한적한 건물 안에 있어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번갈아 쐬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울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커뮤니티를 둘러보니 유명한 제주 올레길 조차 낮에는 걸어 다닐 곳이 못 된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렇다고 발 디딜 틈 없는 해수욕장에 혼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처음 3-4일은 그냥 집에서만 지냈으나, 점차 좀이 쑤셔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처럼의 장기 휴가, 이번에 떠나지 못하면 다음 휴가까지 최소 서너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부담감, 작년 여행의 즐거웠던 기억... 점차 어디든 가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듯 했다.

결국 떠밀리듯 컴퓨터를 켜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차에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강원 영동지방의 이상 저온 현상이었다. 특히 전국의 기온이 30도를 가볍게 상회하는 와중에 홀로 태백과 대관령이 20도대를 유지하는 것을 보니 가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정해지면 첫 발걸음은 쉬운 편이다. 난 그 즉시 태백으로 행선지를 정한 뒤 숙박업소와 방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마침 다음날 시티투어가 있기에 신청한 다음 밤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청량리로 향했다.

태백

태백시는 내겐 생소한 도시다. 동해안 갈 때 버스나 기차로 지나쳤을 법도 하고, 혹은 도보여행으로 지나치면서 표지판이라도 봤을 법 한데 어째서인지 기억에 없다. 그나마 인터넷을 뒤져서 아는 것이라곤 시원하다는 것, 대관령/횡계와는 다르게 찜질방과 PC방이 있어서 모텔이나 펜션을 이용하지 않아도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그리고 바람의 언덕이라는 근사한 곳이 있다는 것과 그곳의 아름다운 사진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래선지 이런저런 생각과 가벼운 흥분 때문에 기차에서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때문에 태백역에는 새벽 2시즈음 뜬 눈으로 도착했는데, 가볍게 몸을 움추러들게 하는 한기를 맞이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 했다. 문득 피서 두 글자를 떠올리곤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마땅히 할 것이 없어 부근의 성지 사우나에서 밤을 보내는데 냉방이나 난방이 없어도 잠들기가 편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부근의 편의점에서 대충 첫 끼를 때우고, 시티투어를 하기 위해 역 앞의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작년의 여행에서도 첫 날은 시티투어 버스로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면 비교적 수동적이던 일상과 적극적으로 매 순간을 결정해야 하는 여행지 사이에서 적당한 완충재가 되어주는 것 같다. 참가자들을 훑어보니, 4-50대 이상 되보이는 고연령자가 절반 가까이인 점이 작년과 다른 점이었다. 순천에서는 20대 초반의 인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는데, 가만 보니 이는 태백시에서 시티투어를 개시한 지 두달이 채 안 되는 까닭인 것 같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투어 평가를 위해 탑승한 평가위원인 모양이었고, 나머지는 대화로 보아 지역민들로 보였다. 또 일행 없이 탑승한 사람이 오직 나 혼자였던 것도 달랐다.

곧이어 가이드 아저씨의 화려한 입담과 함께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여행자들은 들뜬 마음에 쉴새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첫 방문지는 삼수령이다. 말 그대로 세 가지 물, 즉 한강, 낙동강, 그리고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갈라지는 뜻 깊은 고개인데, 앞서 말한 바람의 언덕이 가깝기 때문에 태백 오는 이들은 필수적인 방문지로 꼽는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실제 물길이 보이지는 않으며 마치 수원 지지대고개를 연상케 하는 작은 공원터와 조형물 뿐이라, 충분한 사전 지식과 호기심을 가지고 헤아리지 않으면 되레 실망만 하기 좋아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정자에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검룡소로 이동했다.

검룡소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이를 보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내려 1.3km 가량을 숲길로 가야 한다. 길은 등산로 같은 느낌이지만 경사가 매우 낮아 무척 오르기 쉬운데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걷기 좋은 길이라고 한다. 문득 길을 걷던 중 가이드분이 오늘 같은 한여름의 정오에 이런 길을 땀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곳은 태백 뿐이라고 얘기하니 사람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실제 매우 서늘한 것이 초가을을 방불케 할 정도여서 전날까지 겪었던 서울의 찌는 더위를 생각하면 참으로 신세계이긴 했다.

가는 길에 여러 종류의 풀과 나무들을 만나고 이야깃거리가 있을 때마다 가이드 분이 설명을 해주시는데, 단순히 이름 외에도 식물의 용도나 이름에 얽힌 역사, 꽃말, 혹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경위 등을 제각기 설명해주시는 것이 나름대로 들을 거리가 풍성했다. 하지만 나처럼 평소에 이런 야생 식물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은 아무래도 외관을 제대로 기억하고 머릿속에 오래 남기지 못한다. 애써 하나씩 촬영하고 기록해봐야 추후 관심이 사라져 다시 보지 않을 테고, 뒷사람이 자꾸만 등을 떠미니 제대로 기록해놓기도 어렵다. 또 길에서는 간간히 무척 시원해보이는 물줄기를 마주하는데, 내심 촬영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지나쳐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은 시티투어의 한계이다. 버스에 우르르 타고 내리며 짧은 일정에 쫓겨 바쁘게 이동을 해야 하니 무엇 하나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만일 가이드가 채근할 일이 별로 없는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을 가진 몇박 몇일짜리 시티투어가 있으면 어떨까? 주위를 둘러 보니 사람들은 제각기 풀마다 계곡마다 사진기를 들이대고, 또 좋은 배경을 골라 자신들의 셀카를 촬영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게 있으면 다들 지루해 할 것 같다. 문득 그런 사진에 무엇이 남느냐며 질문을 던져 들쑤시거나 거창한 여행론을 펼쳐보고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편안하게 가이드와 관광 버스를 대동하고 다니는 입장 아닌가? 웃을 수밖에.

그래도 설명 중에 기억에 남았던 것들이 있는데 하나는 계란후라이 꽃이라고도 불린다는 개망초다(허무개그 정도로 생각하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정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개화기에 들어온 뒤 공교롭게도 망국의 시기에 번성해서 불길한 상징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쓴 풀이라는데, 그 모습은 오히려 안온하고 귀여워서 오히려 사람들의 화를 돋우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낙엽송(잎갈나무)이라는 나무는 한때 조림을 위해 일본에서 적극 들여왔다가 나중에는 자연경관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제거 사업의 대상이 되기도 한 특이한 나무인데, 종종 이런 외래수종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이 생태계에 대해 제대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터넷에서 공포의 10대 외래 동식물 같은 글을 읽어보면 특히 그런데, 사람이란 멀쩡히 있는 식물에 멋대로 이름과 상징을 붙이고 숭배하거나 비난하며, 되도 않는 미감이라는 것을 채우려 옮겨놓다가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고, 애써 심었던 것을 도로 뽑는 등 번거로운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나마 책임감을 가진답시고 복원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 용기는 가상하나 잘 해내질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한때 황소개구리가 전국에 악명을 떨쳤지만, 결국 잘 보이지 않게 된 건 자연의 억제력 때문이지 그때 사람들이 피운 난리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문득 플레인 스케이프의 등장인물 래벌 퍼즐웰이 떠오른다. 그는 문제 풀기를 좋아하지만, 결국 풀어낼수록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묘한 존재인데 작가는 딱 이런 인간의 아이러니를 빗댄 게 아니었을까?

계속 들어가 이무기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물줄기에 이르니,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는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소는 물줄기를 볼 수 있는 나무로 된 다리와 정자로 이루어져 있고, 깊은 구덩이는 돌로 메워져 볼 수 없었다. 사실 삼수령이 그랬듯 전설이나 지리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정경이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물속에 던져놓은 숱한 동전들이 눈에 띄는데, 추후 방문할 황지 연못이나 심지어는 용연 동굴의 전시용 금괴 더미에서까지 발견되는 이런 돈 던지기 관습은 잘 이해가 안 간다. 별다른 전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명하다는 물에 일단 동전부터 던져놓는 것을 보면 옛날 산신령 등의 민간 신앙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네티즌들의 유희 중 하나인 인터넷의 ‘성지’에다가 소원을 적어놓는 것도 떠오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희이므로 동일한 정서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고... 그래도 황지 연못 같은 경우는 동전을 받으려고 물 속에 거북 모양의 커다란 그릇이 있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가 아니면 좀 의아하다.

점심

점심 식사는 자유 시장 부근에서 사람들을 내려주므로 부근의 가게에서 먹었다. 내가 찾은 국수 가게는 가이드 분이 메뉴 별로 언급한 식당들 가운데 하나인데, 아무래도 이런 먼 곳에 와서 잔치국수나 비빔국수, 콩국수 같은 걸 먹으러 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그 가게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사실 난 단지 혼자인 까닭에, ‘점심 시간에 상점이나 주인에게서 겪기 쉬운 불쾌한 경험들’을 피하고자, 사람도 적고 혼자 시키기에 부담도 없을 것 같은 쪽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메뉴를 보니 의외로 명물이 되어도 손색 없을 것 같다. 잔치국수가 소-중-대로 각각 1,000, 2,000, 3,000원. 다른 메뉴들도 5천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시킨 3천원짜리 콩국수의 국물이 무척 담백 했는데, 콩의 종이 다른지 수도권에서 흔하게 먹던 것들과 달리 맛이 어딘지 독특하다. 시원한 물김치는 덤.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짧게 소개하면 하나는 별 생각없이 시내 구경을 한답시고 돌아다녔는데 발길 닿은곳이 하필이면 황지 연못과 자유시장. 나도 처음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냥 공원인 줄 알고 들어섰다가 나중에 명패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 둘은 바로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예정된 곳이다. 화들짝 놀라 서둘러 빠져나오고 말았다. 또 다른 하나는 투어에 참여했던 할머니 무리가 연락이 안 되어 10분 이상 버스 출발 시간을 지체되었는데, 정작 그 일행은 ‘제대로 식사도 못했다’ 같은 얘기를 하며 버스에 느긋하게 오르는 뻔뻔함을 보였다. 결국 어디선가 어디선가 ‘무슨 상관이야’하는 불만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도 조금 화가 났었는데, 좋게좋게 이해하자는 가이드분 말씀에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용연 동굴

동굴은 평소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곳이다. 용연 동굴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시야가 확보된 것이 아니어서 서늘한 기후 외에 그것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주차장에서 주기적으로 운행되는 열차를 타고 입구까지 올라가는데, 차량이 수원 화성이나 여느 관광지에 있는 그것과 같다. 안전모를 쓰고 안에 들어가니 가벼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하다. 그런데 안에는 여러 가지 조명이 나오는 인공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동굴과는 휑해서 잘 어울리지 않는다. 천연 동굴이라고 하는데 꼭 이런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계속 들어가면 의외로 길이 꽤 긴데, 다른 동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것은 아니나 800m 일방통행 코스를 걷는 동안 급경사나 몸을 거의 수그리고 지나쳐야 하는 곳들이 많아 나름대로 모험심을 자극했다. 대신 길이 워낙 좁아 동굴 형성물들을 제대로 보고 즐기려는 사람은 뒷사람을 가로막게 되므로 민폐가 되기 쉬운 것 같다.

구문소와 황지연못

코스가 생각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든 건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 부터서다. 입장 전에 가이드 분이 생명의 탄생부터 인류에 이르기까지를 개괄하시는데 관심사도 아니고 용어도 많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안 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박물관 코스 중에는 용어와 이론적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적혀있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갈 시간은 못 되고, 아무래도 눈요기가 되는 것들 위주로 시간을 채우게 되었다. 내 생각에 박물관에서 다루는 것들은 초보자들도 보기 좋게 안내되어있지만 그래도 한시간 정도로 후딱 보고 지나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태백에는 생각보다 볼 거리가 많은데 다른 곳을 들렸더라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바람의 언덕이라던가.

반면에 부근에 있는 다른 탐방지인 구문소는 상당한 볼거리였다. 바위에 난 커다란 구멍으로 물이 흐르는 이 소는 폭포와도 호수와도 느낌이 전연 다르다. 그때가 오후 서너시 쯤이었는데 구멍 건너편에서 햇빛이 새어들어와 절경이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도로가 지나는 다른 구멍이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길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구문소가 있는 석벽이 참으로 거대한데 도로가 없었더라면 정말 아름다웠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황지연못이다. 시가지인 자유시장 부근에 위치한 이 곳은 얼핏 보면 평범한 공원 호수같은데, 실체는 하루 5천톤의 물이 솟아난다는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구문소에 이무기의 전설이 있는 것처럼 여기에는 황노인의 전설이 있는데, 그의 며느리가 스님의 말을 어기고 재앙이 벌어지는 곳을 돌아보다 미륵바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어딘지 성경에 나오는 롯의 아내 이야기와 비슷해서 흥미롭다. 대홍수 처럼 인류 공통의 신화 소재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물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투명하면서도 옥처럼 푸르러서 묘한 느낌이 든다. 또 이곳을 가로지르는 다리 아래에 거북 모양의 그릇이 있고 주변에 수많은 동전들이 떨어져 있는데, 앞서 얘기했듯 별다른 설명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진 이것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 나로서는 던지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퍽 궁금했다.

바람의 언덕

투어 참가자들이 마지막 코스인 황지 자유시장을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투어는 5시 즈음에 끝이 났다. 아무래도 PC방이나 찜질방을 들리기엔 이른 시간인 것 같아 바람의 언덕을 보러 가도 되는지 가이드분께 여쭤 보았는데, 뜻밖에 해가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이 가장 보기 좋은 시간이라고 하신다. 다만 셔틀 버스가 다닐 시간은 아니라서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근처 기사분께 말씀을 드리니 익숙하게 매봉산 고랭지로 차를 몰아 주신다.

오르는 동안 나는 무척 들떠 있었는데, 출발 전 모니터에서 본 바람의 언덕 사진들이 워낙에 좋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에 쫓기고 일행에 떠밀리던 투어와는 달리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혼자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서 자고 있던 카메라를 꺼내 손질하고 바깥을 보니 이미 고지대에 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산의 변덕스런 날씨였다. 산 아래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구름이 아주 조금 있는, 그래도 비교적 맑은 날씨였는데 바로 그 구름이 산을 지나치는 모양이었다. 돌아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시야가 흐려지고 맹렬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동안은 그래도 시야가 넓어지다 좁아지다 해서 곧 나아지겠지 하고 여유만만 했는데, 해가 저물어갈수록 시야는 점점 좁아지더니 급기야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서 날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다시 풀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산 아래보다 훨씬 서늘했던 날씨는 해가 저물수록 무섭게 추워져, 가져온 외투 한 벌로는 버틸 상황이 못 되었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서 본 풍경은 마음속에 다시 담아놓고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계속 코를 훌쩍여야만 했으니, 다음 날의 여행이 걱정되어 시내에서 따뜻한 국밥을 먹고 몸을 따뜻히 하느라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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