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말 남도여행 3일차 개인

보성으로

조금 늦잠을 잤다. 편의점에서 빵과 두유로 대충 배를 채우고, 서둘러 보성행 기차에 올랐다. 순천에서 보성으로 가는 기차가 흔치는 않다. 다만 이른 아침에는 연달아 있어서 크게 늦지 않게 보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는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니 맘이 새로웠다.

보성에서 내린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나처럼 하나같이 여행객들이었다. 그들은 돈을 찾거나 아니면 곧장 역에서 이어진 육교를 따라 뒤편의 녹차밭행 버스를 타는 정거장으로 이동했는데, 그쪽은 집이고 사람이고 전혀 없는 쪽이어서, 이렇듯 역에 내리자 마자 읍내를 빠져나오고 나니 좀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보성 여행이라기 보다 녹차밭 여행이라고 해야 옳겠지? 이런 식으로 다녀도 지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혜택이 가는 걸까? 등등. 그 고장의 사람과 문화를 느낀다는 배낭여행과 거리가 먼 여행임은 분명했다. 더구나 나처럼 민박도 아닌 찜질방을 전전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좀 찝찝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서서 이동을 하는데, 창 위쪽이 녹색으로 썬탠이 되어 창밖을 전혀 볼 수가 없는 게 좀 아쉬웠다. 그래서 마치 텔레포트를 하듯 버스에서 내리고, 조금 걸어가니 (보성 녹차밭으로 알려진)대한 다원의 입구다. 조금 들어가니 쉼터와 매점들이 있고, 거기서 언덕을 조금 오르면 마침내 유명한 차밭이 여행객을 반긴다.

사실 그동안 사진으로, 영상으로 수없이 접해 온 차밭이니 무슨 대단한 감흥이 일지는 않는다. 다만 어제의 순천만이 그러했듯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별다른 장관이다. 아마도 규모 때문일 것이다. 100인치가 넘는 스크린이 있어도 영상을 통해 압도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또 많은 차밭이 산등성이를 따라 급한 경사 위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모자를 눌러쓰고 일하는 사람들과 군데군데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실제 재배지라는 곳을 깨우쳐준다. 늘어선 차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읽었던 야부기다와 국내 자생종의 구분법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으나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전에 들은 바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다원에서 길러지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야부기다의 개량종이라고 하니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차밭 곁으로 이어진 길을 타고 산을 오르는데 여기서 일하는 이들은 어찌 이곳을 매일 오르내리나 싶다. 특히 꼭대기 부근의 계단은 결코 뒤를 보기가 싫을 정도로 아찔한 경사를 자랑한다. 꼭대기에는 바다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어제처럼 안개가 많아 바다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땀을 식히고 동영상을 찍은 다음 뒤의 산책로를 따라 폭포도 구경하고 모기도 쫓고 하면서 슬렁슬렁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쉼터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서울에서 먹는 것과 맛이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디처럼 녹차 가루라도 뿌렸으면 좀더 특별한 맛과 인상이 남았을텐데 그것이 좀 아쉽다. 나가는 길의 대나무숲도 들렀는데 다원의 대나무 숲이라는 점과 동선이 좀 뜬금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들르지 않고 그냥 빠져나갔다. 사실 대나무가 엄청나게 굵었다는 점 외에는 별달리 적을 내용도 없다.

기다림

11시쯤 빠져나와 율촌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렸다. 정거장에는 네 명의 여학생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세 명은 한 팀이라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때때로 환호와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아이들은 왜 저리 소란할까. 나는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인가?(-_-) 하는 까칠한 생각들을 하는 사이 택시 하나가 와서 협상을 벌인 뒤 네 명 모두를 싣고 부리나케 달려간다.

사실 그 네 명은 나와 달리 보성역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는데,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여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편 정거장이 굴다리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선지 더러 나에게 와서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뒤로는 쭉 혼자였다. 이상도 하다. 인터넷에서 보니 보성차밭과 율촌해수욕장, 그리고 인근의 녹차해수탕은 보성여행의 단골 코스던데, 왜 다들 녹차밭을 보고 돌아가버릴까? 내일로 티켓으로 하루 서너군데나 되는 지역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일수도 있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해수욕장 운영 시즌이 끝나 바다를 보는 것 외에는 별반 할 것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성에서 하루를 묵을 생각도 하고 있었으므로 기왕에 구경도 하고 바다가 보인다는 해수탕에 몸도 한번 담궈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류장 한 켠의 뙤약볕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기다리는 것 만으로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뜨거운 한낱, 매미는 쉼없이 울어대고, 도로에는 지나가는 차 하나 없는데 그 세상의 광경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무엇을 보러 와서 무엇을 보고 가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묻는 듯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뜨거운 한낱, 매미는 울어대고, 차 한대 없는 그 풍경에 산과 들을 끼고 또 내가 서 있었다.

율촌 해수욕장

시즌이 끝난 해수욕장은 더없이 한산했다. 부근의 야외 수영장은 폐쇄된 채로 물을 빼내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직 8월인지라 도착하기 전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멀리 해수탕 간판이 붙은 건물들은 이미 문을 걸어잠궜을 듯 하여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대신 부근의 한적하기 짝이 없는 모래밭을 거닐었다. 온도만 아니었다면 겨울바다인줄 알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모래산을 만들고 즐긴 듯한 곳에서 앉아 경치를 감상하다가, 삼각대를 꺼내고 그 위에 카메라를 얹었다. 이제야 꺼내는 이야기지만, 사실 몇년 전부터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 바로 경치를 담은 동영상을 찍는 일이다. 계곡이나 바다 같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안에서, 아무도 없는 사이, 조용히 풍경과 소리를 기록한다. 그러나 애써 여러 장면을 찍고 편집해서 멋진 다큐멘터리처럼 꾸밀 마음은 없었다. 그냥 한 씬으로 카메라의 움직임 없이 가만히 한 풍경을 응시한다. 반복되지만 반복되지 않는 영상. 그리고 카메라를 세워 놓고 곁에 앉아 가만히 그 경치를 함께 보는 나.

제작년에 이 생각을 처음 하고는 동영상이 잘 찍히는 포켓 카메라와 외장 마이크를 구비했는데, 그 때는 많은 곳을 다니지 못하였다. 혹은 어딜 다녀도 사람 없는 장소가 없었으니 운도 따라주질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마침내 그것을 떠올리곤 또 그것을 하게 되었다. 사람 없는 곳에서 카메라를 돌려놓고 옆에서 함께 그것을 보는 일, 누군가 듣는다면 바보스럽겠지만 나에게는 또 각별한 그 소원 하나가 2년만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아래의 영상이다.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10분을 가만히 즐긴다면 나름대로 여러 사건들이 있다. 스티로폼 통이 나갔다 들어오고, 배가 지나는가 하면 햇살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맘에 드는 영상이지만, 아쉬움도 없진 않다. 하나는 영상이 너무 어둡게 찍힌 것. 다른 하나는 파도소리 못지 않게 매미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마이크 성능이 별로라 그런지 스피커로 듣기에 썩 좋은 소리는 것이다. 내 HX7V에 지향성 스피커를 연결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그것이 좀 아쉽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쨌거나 나중의 소감이다. 당시에는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역마살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나와 부근 식당(녹돈 어쩌고 하는 삼겹살 전문점)에서 밥을 먹었다. 메뉴는 김치찌개였는데 찬이 맵고 짠 종류가 많은 것을 제하면 고기도 제법 들은 찌개가 기억에 남는 괜찮은 식사였다. 나와서 음료나 마시고자 부근 편의점을 찾았는데, 뜻밖에 광주행 직통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당초 이곳 해안에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이었는데, 1시도 안된 시간이고 해서인지 그만 평소의 모험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웬지 더 새롭고 멋진 곳이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더 많은 곳을 봐야 한다는 강박은 아니기에 썩 불쾌하지 않은 호기였다. 여행 전 사전 조사에서 순천-보성-담양을 묶어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광주 부근의 담양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또 가면 많이 걸어야 해서 단점이라고 하는데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코스가 될 듯 했다. 사실 여행 온 것 치고는 걸음의 양이 턱없이 적게 느껴지기는 했다.

문제는 광주와 율촌의 거리는 쉽게 지나칠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인데, 나는 정말이지 뭔가에 홀린 듯 냉큼 표를 끊어서 올라타고 말았다. 차라리 그 자리에 -결코 있었을 리가 있었지만- 강진이나 해남행 버스표가 붙어 있었다면 좋았을 걸. 타고 나서야 후회하기를, 광주-담양 코스는 상대적으로 전라남도의 북쪽에 속해 있어서 수원으로 귀환할 때 마지막으로 들렀으면 상대적으로 똑똑한 여행이 되었을 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화순 부근의 아름다운 영산강 상류 풍경을 보면서 이 선택이 결코 여러 아쉬움 중의 하나가 아닌 이 여행 최대의 아쉬움으로 남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즉 더한 잘못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후 광주로 들어오면서 커다란 건물들과 빽빽한 자동차, 신호등 밭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어느새 여행자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일까. 서둘러 버스정거장으로 향한 뒤 담양행 버스를 타고 기다리니 세 시가 좀 넘어서 유명한 담양의 죽녹원을 만날 수 있었다.

담양

담양. 대나무의 고장 담양. 대나무 숲, 대통밥, 대나무... 무언가가 머리에 얼른 그려지질 않는다. 담양 여행객들이 눈에 띄기에 냉큼 오기는 했는데, 뭘 볼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나주 등 다른 소재 없이 유명 특산물만으로 관광상품화 하려는 많은 지자체들의 고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폰을 꺼내 이것저것을 알아보았다. 스마트폰이 메일 확인 따위로 사람을 쉴새없이 괴롭히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한다. (한편 오기 전에 알람과 메일 동기화 기능을 모두 꺼버렸는데, 이번 여행에서 무척 잘 한 일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

일단 '담양 여행하려면 죽녹원에서 내리세요'라는 말만 듣고 버스에 몸을 실은 터라 불안하였는데, 다행히 버스 기사 아저씨가 기본적인 것들을 일러 주셨다. '바로 이곳이 죽녹원, 여기서 200m 정도 나가면 사거리에 죽림원, 왼쪽이 관방제림, 강변을 쭉 따라 내려가면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길.' 죽녹원과 죽림원이 무슨 차이인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저씨가 말한 죽림원은 유명한 대통밥 식당 이름이었다.

우선 죽녹원에 들러 이것저것을 보았다. 대나무, 대나무, 대나무... 여기엔 호불호가 좀 있을 법 하다. 숲에는 정말 대나무밖에 없다. 물어대는 잔모기들이 좀 있어 한 자리에 앉아 가만히 숲 냄새를 맡을 여유는 없었지만,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대나무숲으로 인한 그늘, 이름부터 잘 조성된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등 여러 테마 산책로들은 나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뒤에 대나무 문화 체험 마을이 있는데, 1박 2일 촬영지라는 문구가 대서특필 되어 있어 반감이 들었다. 난 밥집이든 여행지든 어디 나온 유명지라고 하면 왜 이다지도 싫은 걸까. 아마도 그러한 장소에 가서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렇게 숲을 즐긴 뒤 나와 가까운 관방제림으로 향했다. 몇백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나무들을 끼고 있는 길에는 동네 주민들과 많은 여행객들이 와서 쉬고 있었다. 사실 수령이 많은 나무들보다는 그옆 영산강의 평온함이 은근히 사람을 매료시켰다. 서울이나 수원의 하천 부근 가운데 이토록 평온한 곳이 있던가? 가다가 큰 도로를 만나는 일이 없진 않지만 강을 따라서 달리지는 않고 당장 주변이 논밭이라 자연스레 수도권의 하천에 비해 여유가 깃드는 듯 싶었다.

반면,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유명한 메타세콰이아 길은 악명대로였다. 거대한 나무들이 줄지워져 처음 보기에 압도하는 면이 있었지만, 듬성듬성하고 바로 옆에 도로가 환히 보이다 보니 낭만적이기 보다는 휑한 느낌이 더 컸다. 담양시는 주변에 나무를 좀더 세우고 길을 좀더 안쪽으로 들여오는 것이 어떨까? 동선도 괴상해 들어서다가 막바지에 다시 돌아 나왔는데, 내가 애당초 길을 잘못 파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죽녹원 옆 국수거리의 가게에서 비빔국수 하나를 먹었다. 대단 맛있거나 하진 않았지만 간이 나무랄 데 없이 잘 되어 있고 저렴한 가격(3,500원)에 평상에 앉아 강을 끼고 먹는 것이 또한 운치가 있었다. 삶은계란도 파는데 보통 빈 속에 한두 개만 먹어도 배부른지라 엄두가 나질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하나만도 파냐고 물어볼 걸 그랬을까. 다른 별미인 대통밥은 별로 호감이 가질 않아 시도하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의 화두였던 강박에 대한 경계보다는 남들이 꼭 해보라는 것에 대해 반골 기질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만 부분이다. 또 내 주변에는 그렇게 먹어보았다는 사람들이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는 경우도 드물었고 말이다.

광주로, 강진으로

밥을 먹고 일어나니 어느새 6시다. 다른 유명 관광지인 소쇄원이 있었지만 교통이나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따라서 담양에서 하루를 더 묵을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수원으로 귀환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사실 이렇듯 여행을 일찍 끝낼 생각은 없었는데 마음 내키는 대로 광주에 오고 나니 엉뚱한 선택지가 하나 개입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수원-여수처럼 6시간 쯤 걸리는 길이라면 모를까 전남 어디든 2-3시간에 닿을 수 있다면 차라리 다른 여행지에 들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광주 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는데 돌이켜 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담양에서는 불과 세시간 정도를 보냈을 뿐인데 그 시간이 결코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담양에 볼 거리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마치 매우 많은 시간을 보낸 것처럼 여겨졌다. 돌이켜 보면 지나온 다른 여행지들도 그래왔다. 한두 시간을 있어도 반나절을 보낸 것 같다. 왜일까? 수원에서는 컴퓨터 조금 두드리다 보면 서너시간은 훌쩍 넘기곤 해서 한시간 정도는 아무 것도 못할 시간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런데 여행 와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지나간다. 이것은 여행지에서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는 다른 이들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매우 이상한 것이다.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혹 일정에 대해 아무런 조급함을 가지지 않아서 그랬을까?

어쨌든 광주 터미널에서 인터넷으로 몇 가지를 알아본 후 강진을 들러 해남에 가 보기로 했다. 목포에서 묵었다가 이른 아침 일출을 본 다음 제주도행 배를 타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남은 시간을 고려할 때 비용도 많이 들고 제주에 간다 해도 처음 장거리 배를 태 본다는 (어쩌면 배멀미에 끔찍할 수도 있는) 경험과 제주도의 상징성 외에는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해남에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짓기로 마음먹고, 강진행 표를 끊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잠시 근처의 영풍문고에 들렀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발길 닿는 대로,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에서 하듯 '몰링'을 해본 것인데, 잠시 상품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심한 거부감이 들어 그만 뛰쳐나오고 말았다. 재밌는 일이다. 머릿속에 특별한 강박은 전혀 없었는데도, 마음속으론 그렇게나 도시에서와는 다른 생활양식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무의식을 계속 억누르면 무의식이 끝내는 자신을 배반한다고. 언젠가부터, 달빛요정의 노래처럼 '내 안의 내가 나를 이끌어' 걸핏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황같은 서울 구경을 하면서도,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던 여행. 그것이 물꼬가 터지자 막을 수 없을 만큼 큰 욕구가 솟구쳐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모든 것을 시작했으니 더 멀리, 더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라고 나를 부추긴다. 그러나 남은 시간과 돈은 그것을 허용치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이 감각을 잊지 말자. 더 많은 곳을 다니는 것 보다 더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히 응해, 더 성실하게 일분 일초를 보내고 느끼자. 그렇게 느낀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더 큰 욕망을 쌓자. 그리고 그 욕망을 다음 여행을 떠날 때까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키자.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우연히도 삶의 이정표가 하나 세워졌다. 문득 카메라를 들고 떠날때마다 스스로에게 답은 얻었느냐며 추궁해온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역시, 그런 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아, 놓아버리지 않으면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모르겠다.

한편 (당연한 것이지만) 썰렁한 강진행 버스를 타면서 광주가 생각보다도 훨씬 큰 도시임을 보고 놀랐다. 이런 데에 새삼 놀라는 걸 보고 서울 촌놈이라 하는 것이리라. 야간 버스는 기차와 달리 불을 꺼 주는데 잠이 별로 오지 않음에도 유달리 그것이 좋았다. 단지 뒤쪽에 앉은 소년들의 떠들썩한 수다는 이어폰으로 틀어막았지만, 머지않아 기사 아저씨가 전면의 TV로 틀어준 일일 연속극만은 어찌하지 못했다. 또 선남선녀들이 심각한 얼굴로 서로 고함치며 싸운다. 으으, 아저씨, 제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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