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육신 논란에 대하여 고전,전통,온고지신

몇년 전, 일찍이 나의 조상인 충의공께서 순절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을 뒤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육신과 관련한 논쟁에 관해 알게 되었다. 당시는 어려서, 그저 한 가지를 보고는 사육신이 아니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조실록에 보면 공만이 공초에 부복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처음에 이를 보고서는 '공은 뜻이 높은 분이셨다 들었는데, 만약 가담하셨다면 어찌 부복하셨겠는가? 도리어 당당히 꾸짖으셨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공께서 부복하셨다고 해서 반드시 가담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니 돌이켜 보면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후에 일부 기사들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61 을 통해서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듣고 정녕 조상께서 억울함을 당하셨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관련 내용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마침 서점에 관련 책이 나와있기에 (이재호 - ''조선사 3대 논쟁', '유응부인가 김문기인가') 찾아서 보았는데, 여느 논문 같지 않게 처음부터 단정적인 화법에 유신 권력자와 연계까지 하는 통에 적지않은 반감을 가졌으나, 곧 내가 아는 모든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하는 것을 보고는 달리 할 말이 없어졌다. 아마 이에 대한 체계적인 재반론이 없다면 나는 이것을 정론으로 삼을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당금 후손된 이들이 벌이는 일들은 도리어 공과 여러 선현의 이름과 뜻을 욕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다만 저 기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실록에서 유응부 장군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 점인데, 실제로 책에서 인용한 세조실록의 기사를 보니 장군의 세세한 내용은 없고 오히려 가담자 열거에 공의 이름이 앞서서 언급되는 것이 보인다. 또 하나는 이재호 교수의 말대로 유응부 장군의 직책이 잘못 표기되었던 점이 정말로 작은 문제냐 하는 것이다. 또한 영정조 당대 연구가들에게 육신전이 이미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때 세조실록을 어느정도나 검토하였는지도 관건이 될 것인데, 혹자는 연구자들이 세조실록을 아예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재호 교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아 이론의 여지를 없애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진실이 가려져 어느쪽이든 우부우부의 소행이 그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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