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 그리고 여유 생각

지인과 함께 홍대에 있는 로모그라피 갤러리에 들렀다.
나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분께서 로모 매니아신지라
이번에 와이드 어쩌고 하는 신제품이 출시되어 들러보자고 하신 게다.
들러보니 가게에는 로모 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함께 여러 종류의 토이 카메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로모라...
10년이 조금 못 되었나. 지인들 한참 로모 열풍이 풀때
홀가라는 조그마한 토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 적이 있다.
정사각형의 중형 필름을 사용하는 장난감같은 재질의
크고 가벼운 카메라.
여느 토이 카메라가 그렇듯 화질은 논할 가치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카메라를 제법 즐겁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롤, 소중하게 담은 한 장 한 장은 서로 연속성이 없었다.
시간도, 장소도, 피사체도 다른, 다만 '나'로만 엮여져 있는 프레임들.
그것은 그때나 오늘날의 난사 습관에 비추어 보면 놀랍도록 신중한 것이었다.

필름이어서? 그건 아니다.
당시 나는 미놀타의 X-700과 a-Sweet II라는 다른 필름 카메라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못내 난사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었다.
카메라를 처음에 디지털로 접한 까닭에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첫 장이, 또 두 번째 샷 마저 실패하면 어떻하지 하면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진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근래에 고심에 고심을 더해 구입한 소니의 HX5V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는,
빠른 속도에 야간에 능한 고감도 촬영 능력과 강력한 손떨림 방지 기능을 보고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사진 촬영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그보다는 나의 사진 생활을 더 즐겁게 해 주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피사체를 대하는 시간은 더욱 짧아졌고,
프레임 속 풍경에 온전히 집중하는 대신
프레임에 얹어진 격자에
피사체를 황금비율로 배치하고 수평을 맞추느라 애를 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전문 사진가도 아닌 주제에 뭘 하는 것일까.

과거 홀가를 쓸 무렵 나는 전문적인 사진 강의도 함께 듣고 있었다.
그때 강사가 해준 조언이 있다.
홀가로 찍어 인화된 커다란 정사각형 중형 필름이 주는 감동,
흐릿한 초점과 비네팅이 주는 몽환적인 효과,
이런 것에 의존해서 다른 사람들과 겨루지 말아라.
착시현상을 경계하라는 말이였다.
그리고 원래 쓰던 35mm의 SLR과 50mm의 렌즈로 실력을 키우라는 말이었다.
맞는 이야기다. 내가 직업 사진가나 정말 사진을 정석대로 잘 찍으려고 했던 사람이라면.

나는 한때 그렇게 되려 했고 그래서 홀가를 버렸다.
그 결정이 지금은 후회된다.
과거에만 느낄 수 있었던 무언가 본질적인 재미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서...

마침 그 가게에도 홀가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 카메라를 잡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내가 과거를 생각하며 그 기기를 다시 집어드는 것은,
그저 나의 슬럼프에 외물을 핑계삼는 것 이상은 되지 않으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기기에 먼저 재미를 붙이는 쪽이,
여러모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경험이 속삭이고 있기 때문에.

사진이란 것에 또 취미란 것에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Tag :
,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