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에이즈 – “개봉박두 – 에이즈 캠페인 영상 콘티 만들기” 후기 생각

지난 토요일에는 살롱 드 에이즈의 마지막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적으려고 보니 고작 세 번 참여했는데도 마치 긴 여정이라도 다녀온 듯 섭섭한 마음이 드네요. 동인련 활동가인 웅이 님이 진행한 네 번째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최종적으로 에이즈 캠페인에 쓸 영상의 콘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먼저 각 나라에서 상영된 캠페인 영상들을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영상들을 보았는데 첫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Grim Reaper”입니다. 1987에 만들어진 이 영상은 당시 상황이나 영상들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완성도를 논하기 어렵지만 검은 옷의 사신을 등장시켜 죽음의 공포만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이 이후에 나왔던 근래의 영상들과 대비되었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꽤나 으시시한데, 현 시점에선 이렇듯 죽음만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을 영상이지요.

http://www.youtube.com/watch?v=U219eUIZ7Qo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시에라리온에서 제작된 “Stigmatisation”입니다. 보건소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여성을 중심으로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 차별, 배제, 그리고 교육과 반성, 화합으로 이어지는 과정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낸 이 영상은 뻔한데도 은근히 감동적인 면이 있더군요. 하지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꽤나 뜨끔할 내용이었을 것 같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XZ8uVRLjo-s

또 영상은 아니지만 캐치프레이즈로는 “Tester Makes Us Stronger”가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내 감염인 가운데 취약한 흑인 남성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를 타깃으로 한 캠페인인데 공포라던가 안전함, 간편함 대신 커뮤니티의 강건함을 앞세우는 듯한 메시지와 사진들이 참고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http://hivtest.cdc.gov/stronger/index.html

그밖에 특정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나 국내에서 제작된 영상들도 있었는데,  몇몇 영상들은 외국어의 장벽 때문에 영상을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쉽습니다. 또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러한 영상들을 여기 오기 전에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티브이나 신문 등에서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접한 에이즈를 되짚어보면 모두 몇 안되는 기사, 그리고 애써 찾아 구매한 책에서 본 내용들입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기란 식은죽 먹기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감염인의 현실을 생각하면 여러 매체와 커뮤니티 광고 등을 통해서도 이러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탈리아 Cassero LGBT 센터의 영상처럼 상황별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전파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영상 시청을 마친 뒤에는 본격적으로 조를 나눠 콘티 제작에 들어갔는데요. 늘 그렇듯 창작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 제가 있던 조에서는 해외에서 본 좋은 포스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보기도 했고, HIV/AIDS 일곱 글자로 칠행시(!)를 쓴다거나, 상황극을 만들어 마치 예전에 화제가 된 '동성애자 세상의 이성애자' 처럼 편견을 가진 사람이 편견 없는 사람들 속에서 정 반대의 입장으로 살아보는 영상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아이디어는 커다란 미러볼 아래 구분되지 않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는 포스터였는데, 이때 미러볼에 새길 문구로 한 사람에게서 '우리의 불금(불타는 금요일)은 다르지 않아!'라는 문구가 나오자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며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스케치가 완료되자 다들 크레파스를 집어들고 색을 입혀 화려한 포스터를 금새 완성했습니다. 끝으론 조별 발표가 있었고요.

이렇게 해서 마지막 살롱 드 에이즈 시간도 끝이 났습니다. 아마도 이런 후기에는 '훨씬 더 가까워진/많이 알게 된 느낌이 든다'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게 참여하고 많은 것을 얻어가면서도 HIV/AIDS라고 하면 여전히 조금은 멀게 느껴지고 이런 글도 어딘지 겉도는 표현만 하는 느낌이 듭니다. 몇가지 이유를 생각합니다. 제가 늘상 마주하는 관계망에 당사자는 여전히 없거나 드러나지 못하고 있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도 완전히 벗진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당사자를 만나면 나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편견을 없애져야한다고 하지만 나 역시 아직 겉으로만 올바름을 내세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 자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당사자 분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던 첫 시간 '휴먼 라이브러리'에 못 참여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첫 후기에 적었듯이, 또 어디서 이런 내용들을 쉽게 접하고 배우겠어요. 돌이켜보면 혐오기사와 러시아의 현실, 영상 등을 통해 감염인들이 겪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고, 또 관심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활동하는 분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인 듯 싶습니다. 마지막 시간에서도 역시 새로운 분들, 새로운 지식과 함께, 여러 조그마한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캠페인에 있어 알리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고맙게 거둬 갑니다.

내년에 이어질 교육 프로그램을 기대하며 동인련과 웅이 님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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