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에 대한 주저리... 소개

(일기성 글임을 밝혀둠)


내가 리눅스를 만난 지도 언 13년 째다. 엄청나군... 97년 1월에 알짜 레드햇 4가 프세 부록으로 나왔다는 기록이 있어 알아낸 거다.

당시 나는 윈도우를 수없이 다시 깔면서 컴퓨팅에 제법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는데, 레드햇을 망설임없이 깔다 부팅이 안 되어 당황했던 경험이 생생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기하지 않고 리눅스를 종종 깔아 썼는데, 하는 일이래봐야 윈도우 메이커에 그누스텝의 커다란 아이콘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논다던가, 가우에서 머그게임을 즐기거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한 번은 마이컴(당시 잡지)에 나오던 대로 텔넷을 열고 다른 사람을 초대했는데, 웬걸, 잡지에서처럼 낭만적인 일은 고사하고 포크신공 한방에 시스템이 멎어버렸다. 아마 그때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면서 공부했다면 지금쯤 나는 보안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을텐데... 내가 너무 착해서 그러진 못했다.

그러나 당시 내 꿈은 게임지 기자와 게임 개발자였으므로 자연스레 리눅스 사용을 접게 되었다. 3-4일 단위로 엔딩을 보곤 하던 내게 당시 사양으로 유일한 가상 솔루션이었던 VM웨어에서 게임을 한다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고, 와인은 몇 번 IE를 깔아 보곤 재앙에 가까운 물건이라 판단하여 하지 않았다. 그뒤 거주지를 옮겨서는 우연찮게 웹 프로그래머 수업을 들었는데, 하필 처음 배운 물건이 ASP였다. 그 뒤 그게 돈이 되니까 계속 그걸 하게 되고, 그리하여 아직까지 MS의 기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리눅스를 참 좋아한다. 오히려 지금의 우분투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 내가 쓰던 레드햇 머신의 거무튀튀한 윈도우 메이커에 터미널이 떠 있는 모습을 보면 웬지 모르게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자유롭다고나 할까? 그리고 리눅스 서적 뒤에 항상 붙어 나오던 GPL 선언문이나 인터넷 혹은 잡지의 기고문을 보면서 자유 소프트웨어에 대한 강박 비슷한 갈망이 형성되었는데, 이 생각은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있다. 생각컨데, 요즘 내가 가지는 이 강박은 거의 RMS 수준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비주얼 스튜디오고, 졸지에 아이폰 개발까지 해야 하는 지금에 와서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뭐 그런 생각을 유지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자유 소프트웨어에 기여한 것이 매우 적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아마 내 아이디를 아는 사람 가운데서도 내가 어디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영어도 못하고 C도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낯가림도 심했다. 그리고 어느새부턴가는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이 글 서두에 적은 리눅스 경력이 자랑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앞으로는 바뀌었으면 좋으련만.

오늘부터 새로 들어가는 프로젝트는 윈도우 환경에서 ASP.NET과 오라클을 쓴다. 자유 소프트웨어 만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데, 하다못해 리눅스라도 메인 OS로 쓰고 싶은데, 또 저만치 멀어져 간다. (잠깐 VirtualBox로 모든 작업 환경을 옮겼었지만, 도저히 내가 쓸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비웃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 도구를 다른 목적으로도 쓰고 싶다. 그래도 되도록 나는 무엇이든 행동으로 보일 수 있기 전까진 구태여 거기에 토를 달지 않으려 하는데, 당장은 또 뾰족한 수가 생기질 않으니 이대로 영영 가버리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여름 바람이 또 왜 이리 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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