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필요하다고 왜 말을 못해? IT 생각

게임에 대한 논쟁이 사상 유례없이 뜨겁다. 최근의 셧다운제 논의 이후로 여러 논의가 일면서, 이를 주도하고 있는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공공연한 동네 북이 된 듯 하다. 그런 여가부가 주최한 금일 토론회에서, 게임하는 아이는 우리 속의 짐승이라던가 하는 과격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사나 트위터를 보면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황당하다는 분위기고, 더 살펴보면 관련자들의 무지에 대한 성토와 함께 '수출 역군'인 본인들에게 돌아오는 건 범죄자 취급하는 시선 뿐이라고 분노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이런 글들을 보다 보면, 게임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유독 게임의 산업성만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가령 능력있는 애니메이터들이 미국으로 빠져나간 과거 다른 문화 업종들의 사례를 언급한다던가, 게임 산업이 차세대 동력인데 죽일듯 잡도리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데 왜 그러냐는 것이다. 어떤 기사에서는, 관계자의 입을 빌려 반론자들의 말을 "'게임 산업'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런 반박들이 옳은가? 왜 게임 자체에 대한 무지라고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것들은 논점을 벗어난 이야기다. 게임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면서 인체 유해성을 주장하는데, 돈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반론이 되는가? 저들이 게임을 마약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 논리대로라면 마약도 '수출 역군'이 되면 사회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오해는 마시라, 나는 게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모 게임의 30일 계정을 끊어놓고 밀려드는 야근에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이런 내가 게임 산업 옹호론을 보면서, 특히 게임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보면서 갑갑한 건 왜 돈이 된다는 말 밖에 못하느냐는 것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를 비롯한 아마도 많은 게이머들은, 대체로 게임의 장점, 혹은 존재 이유를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해 봐야 취향이니까 존중해 달라던지, 남의 일에 왜 참견을 하느냐는 항변이 고작이었다. 보다 공개된 장소에서는, 간혹 TV에서 연예인이 게임 예찬을 펼치기도 하고, 혹은 교수 같은 식자들이 토론회같은 곳에 나와 문학적 가치를 얘기하거나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들에 대해 주변에서는 '솔직히 그건 좀 무리한 말인 것 같아' 혹은 '교육용 게임에 국한된 이야기지'하는 반응이 많았다. 언젠가 외국 천재 소년이 게임은 시간낭비라고 얘기를 한 것이 기사화되었을때는 동조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농담처럼 회자되는 게이머의 '타임 워프' 능력 같은 건 지름신처럼 웃고 넘기기도 하지만, 게임을 하느라 이런저런 중요한 인간사를 망쳐버린 이야기들은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씁쓸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 뿐일까? 돌아보면 할 얘기는 적지 않은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장편 서사시에서 잘 만든 영화를 몇 배나 뛰어넘는 감동을 느끼고, 온라인에서 짜릿한 팀웍과 자신감을 얻는다. 이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도 있고 직업적 영감을 획득하는 사람도 있다. 게임을 하다 해외여행을 꿈꾸게 된 사람도 있고, 기획자나 개발자, 디자이너같은 관련 직종에 종사하게 된 아이들도 있다. 게이머들은 이런 데서 오는 순기능들을 많이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정말 확신을 가진다면 말이다. 이런 것들은 게이머들이 목소리를 키우지 않으면, 게임이 제대로 된 해방구로서 기능한다거나, 창발성에 도움을 준다거나, 게임을 통해 직업의 꿈을 키운다거나 하는 것들을, 게임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부모된 입장에선 알기 어려울 것 같다.

한편으론 게임을 많이 하면 뇌가 어떻네 사회가 어떻네 하는 주장들이 있다. 위의 소소한 의견들을 근거로 이런 연구에 반론을 가하기는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체계적이고 명쾌하게 수치화된 근거들이 갖추어져야 하고, 여기에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일들을 여러 곳에서 해야 한다. 게임업계가 남는 돈으로 하면 좋겠지만 신빙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반대측 단체나 시민사회와 함께 진행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명백한 결론들에는 겸허히 수긍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게임이 사이코패스나 존속 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것에는 쉽게 수긍할 수 없지만, 게임에 몰두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본인 혹은 자식이 죽거나 세상과 단절한 채 방안에만 갇혀 지내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언론에서 심심찮게 보아 아는 것들이다. 반면에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는 흔치 않다. 이것을 지금껏 그래왔듯 일부 바보들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오감을 오로지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 분별력과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들어간다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등급제나 셧다운제가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면 보다 나은 방안을 먼저 제시하여야 한다. 게임을 즐기는 것이 일상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수치와 함께 확인시켜주는 것이 함께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또 게임의 순기능만 부각시킬 게 아니라 실제로 순기능이 많은 게임들이 더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 혹은 교육기관이나 업체가 만드는 교육용 게임은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인데 게임업체가 만들면 훨씬 더 잘 할 것이다. 판타지 게임의 배경을 실재했던 역사의 한 시점으로만 바꿔도 역사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훌륭한 교육 컨텐츠가 될 수 있다. 과거 대항해시대란 게임이 학생들로 하여금 얼마나 사회과부도를 들춰보게 했는지 생각해 보라. 엔딩이 없으며 무한히 플레이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와우의 휴식경험치처럼 게임 중단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혹 이 모든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구와 분석을 통해 게임이 명백하게 사회악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좀 가슴 아프더라도 게임이 사라지는 것을 오히려 지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기에는, 진실을 바로 보기 위한 기본적인 '대화'조차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편으론 게임업계가 다른 사업자들처럼 단합하여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말도 있고, 애당초 과몰입치유센터나 게임세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일부 세력이 다른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 게임이 사회악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게임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선 게이머들부터 목소리를 높이고(그리고 모으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지금 하는 것처럼 산업의 크기만 운운하는 것은, 반대론자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신 : 이 글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바를 쓰실 거면 가급적 제가 잘못된 것을 알수 있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윗을 쓰실 거면 mmx900 계정으로 멘션 걸어주셔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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