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말 남도여행 2일차 개인

기차에서

예상대로였다. 기차에 오른 지 한시간 정도는 차의 울림에 자연스레 잠에 빠져들었지만, 한 시간이 못 되어 곧 깨어나고 말았다. 평소 잠드는 시간이 3-4시였기에 잠이 안 오는 것이 당연했다.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과 이대로 뜬 눈으로 4시를 맞이하면 끝장이라는 걱정이 겹치자 더더욱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안감에 빠진 채로 1시를 넘어서자 마음 속에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시간 조절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준비 부족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또 그게 그렇게 크게 후회하고 불안해할만큼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재택 근무를 시작한 지 거의 1년, 그리고 작년까지를 통틀어 거의 처음으로 얻은 장기간의 휴가. 여기에서 후회없이 다녀와야 한다는 강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할 수 있으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불가능했다. 혼자서 당일치기가 아닌 외박을 포함하는 여행에서 나는 완전히 초심자였고, 인터넷 외에 누구의 조언도 따로 구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리고 일찍이 여행기들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완벽한 여행이라 자평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무엇이 또 완벽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기준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완벽이란 후회가 없다는 것이고, 곧 잘못된 길로 들거나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다는 것인데, 이런 기계적인 이동과 시간 관리는 사실 내가 여행에 대해 가지는 이상, 즉 '자유와 여유'와는 아득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한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편안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법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길을 걸어가네
...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쉼없이 나는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출발, 김동률

그래, 강박을 가지지 말자.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 이런저런 의무들을 다 내려놓고 떠나자. 길을 가다 좋은 장소를 만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곳을 바라보며 서 있으리라. 떠나고 싶을 때 떠나리라. 잠이 오면 잠들고, 잠이 깨면 일어나고.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조급함만은 어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여유를 가지며 가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식사

편안해진 마음과는 별개로 끝내 잠은 들지 못했다. 순천역에 내린 것은 3시 40분 즈음이다. 내리자마자 전광판에 반짝이는 현재 시간과 역 이름을 보면서 사진기를 꺼내 찍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쳤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게 찍을 사진이 달리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그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일 뿐이라 그런 마음도 역시 내려놓기로 했다.

이어서 근처 찜질방(순천역에서 내리면 왼쪽에 있는 2분 거리의 '지오스파')의 수면실에서 네시간 정도 잠을 자고 버스를 타기 위해 순천역으로 향했다. 버스는 9시 50분 출발이었고 알람은 8시에 맞춰 두었으나 낯선 공기와 어쩔 수 없는 긴장 탓인지 알람보다 먼저 일어나서 알람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시장을 돌아보았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역 바로 건너편의 식당(해월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의외로 식단이 제대로 전라도 구성이었다. 역 바로 앞 가게는 비싸고 형편없을 것이란 편견과는 달리 가격도 저렴하고 근처 시장 사람들이 찾은 것을 보니 여행객 대상의 가게도 아니었던 것이다.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짜거나 달지 않고 입맞에 잘 맞는데다 뭘 넣었는지 진한 된장찌개 국물이 일품이었다. 횡재다!

식후에는 역앞 관광안내소로 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목에 거는 출입증을 받았다. 시티 투어 버스의 탑승권이자 코스 내 각 명소의 출입증인데, 뒷면에는 간단한 안내와 이 증을 착용한 사람에게는 성심성의껏 친절을 베풀어 달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사소하지만 많이 고민한 듯한 문구가 마음에 든다. 출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들이었다. 여자끼리 팀을 이룬 무리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연인들, 그리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예닐곱이었다. 거기에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많았고 카메라는 거의 모든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웬지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와서 또 무엇을 얻고 갈까? '추억 만들기'란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데, 이런 의문을 또 가지는 것은 이상한 걸까나.

출발

관광안내소에서 접수를 받았던 사람이 출발 시간이 되자 함께 올라타 안내를 한다. 이런 버스는 처음이라 시간별로 목적지에만 얌전히 데려다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이드가 포함이다. 설명해 주시는 여자분은 친절하고 대단히 재치가 있다. 버스는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몇 사람이 교대로 안내를 하는데 올해 버스가 증차가 되면서 이런 교대가 없어졌다고 웃으신다. 뒤에 다른 분께 들으니 오늘 가이드가 무척 좋았다고 하는데 다른 도시의 버스들이 다 이렇듯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란다.

첫 번째 행선지는 드라마 촬영장이다. 천국의 계단, 제빵왕 김탁구, 기타 드라마를 촬영했고 또 촬영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 별 관심은 두지 않았다. 6-80년대 거리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군데군데 일제강점기를 연출하고자 한문으로 간판을 새로 씌운 곳도 있었다. 나중에 혼자서 출사를 오면 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을 듯 했지만, 역시 관심사가 아니어서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달동네를 구현한 곳에 이르러서는 조금 놀랐다. 지금은 사라진 봉천동 달동네를 본떴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큰 언덕이었다. 폭염 주의보가 발령중인 무더운 날씨에도 도무지 올라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석구석 다니면서 너비에 돌랐고 잘 짜여진 건물들과 거리의 아름다움에 셔터를 눌러댔다. 본래 나는 간판이 드문 잿빛의 건물들과 텅 빈 거리를 좋아하는데, 정작 길거리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찍지 못하던 장면들이다.

다음으로 삼보사찰 중 하나라는 송광사에 들렸다. 순천 시티 투어는 각 요일마다 조계산의 두 사찰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교대로 운행하는데, 이 날은 송광사였던 것이다. 사실 관광지로서의 사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남들 수도하는 곳에 등산복 걸쳐입고 우르르 몰려가서 수도자들 구경하고 만지작 찰칵찰칵... 뭐니 그게- 아무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뜻밖에 단체 여행에서의 사찰도 기억에 남는 곳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첫째는 가이드의 친절함이다. 가이드가 쉴새없이 입을 움직이며 벽에 적힌 안내 문구의 몇 배는 되는 이야기를 조금씩 이동하면서 들려주는데, 그저 혼자 조용히 관찰할줄만 알았던 나에게 이야기를 알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구나 하는 당연한 것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두 번째는 따로 계곡에 들르지 않는 한 사찰 입구의 계곡과 숲이 내뿜는 소리와 공기가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사찰의 화려함이다. 송광사 대웅전 외부의 압도적인 지붕과 내부의 닫집의 화려함은 사진기를 들고 싶을 정도였다.(그러나 내부는 촬영 금지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대체로 첫 번째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유달리 신선한 숲 향기에 가이드의 피톤치드를 내뿜는 시간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고, 또 사찰 내부를 보면서는 평일이라 경내에 사람이 적고 사람들의 집중도가 높다 하여 대웅전 안과 뒤편의 사리가 모셔진 곳까지 가서 많은 설명을 듣는 행운이 있었다. 설명 중간에 쉬던 스님이 와서 설명을 보충해주시기도 했다.

들으면서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삼보의 개념이다. 불보 법보 승보라고 하는데, 이중 송광사는 승보로서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외한으로서 불경스러움을 무릅쓰자면 불보인 진신사리란 결국 형상이나 음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법보란 절 안의 나무판에만 머물러서야 법이 썩는 것을 끝내 면치 못할 것이고, 국사란 이미 지난 시절의 사람들이다. 뭇 사람들이 TV를 통해 방영된 조계종의 다툼을 기억하는 바, 정혜결사의 개혁 정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설레이는 점심 식사

밥을 먹으러 나오는데 때마침 인터넷에서 보았던 식당(길상식당)이 눈앞이었다. 들어가니 마침 미리 있던 가이드가 혼자 식사하러 온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먹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식당의 편의를 보아준 것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점심 시간대에 혼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담을 피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된 데서 감사하게 여겨지는 데가 있다.

동석하여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은 세 명이다. 모두 여성인데, 한 명은 50대의 아주머니다. 슬하에 21세 된 딸이 있다고 하시며 젊었을 때 많은 곳을 홀로 여행하여 동석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해박했다. 또 한 분은 그보다 좀 어린 아주머니인데 내일 여수로 내려가서 투어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버스 코스가 향일암과 오동도, 수산시장이라고 하는데 여수를 잘 아는 나는 거기에 왜 수산시장이 있느냐고 강하게 의문을 표시했다.) 다른 한 명은 스물 넷의 대학생인데 내일로 티켓을 탑승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왔다고 한다. 문득 내일로 티켓을 뒤늦게 알게 되어 안타까워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세 사람은 모두 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로, 여성이 홀로 여행을 다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는 대화에 끼어들기 힘들었다. 다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무척이나 흥분되었다. 나도 이번 주가 마지막이 아니라 앞으로 한두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어 좀더 많은 곳을 다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낙안읍성

낙안읍성은 초등학생 때에 한두 차례 학교를 통해 다녀 온 것 같은데, 별다른 기억이 없다. 비슷한 또래에 여행을 다녀 온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까. 다시 찾은 낙안읍성은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으나 여러 민박집과 체험시설들이 있어 여유있게 오면 족히 하루를 돌아봄직 했다. 낙안읍성 관아 뒤편의 주산이 북악산과 매우 유사해 놀랐고, 역사를 보는데 임경업 장군이 있었다고 하니 다른 설명이 없어도 족히그 다스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떠날 때는 아마 박지원이 그러했던 것처럼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성벽에서 내려다 본 초가지붕들도 아름다웠다.

낙안읍성의 운영 형태도 이상적이다.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대신 지자체에서 일정한 지원을 해 준다고 한다. 경복궁이나 화성의 을씨년스런 경내를 볼 때마다 드는 것이 대장금 같은 드라마를 볼 때처럼 분주한 일상이 안에 펼쳐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이러한 일(전통 형태의 생활)을 전업으로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자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할텐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더 볼 거리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예전의 생활 방식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기술들을 이어갈 수 있으므로 사라질 기술들 뿐 아니라 무형문화재 인사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낙안읍성의 경우는 그 정도까진 아니고 초가집이라는 외피를 제외하면 여러 전자제품들을 비롯한 많은 현대적 변용들이 개입되긴 하지만 말이다.

좀더 돌아보고 싶었으나 더위로 인해 버스로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2시대의 엄청난 폭염은 주어진 시간보다 무려 10분을 앞당긴 놀라운 전원 귀환 기록을 낳았다) 돌아다니면서 비록 접이식 부채를 쓰긴 했으나 가이드를 비롯한 여성들의 양산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왜 디자이너들은 남성용 양산을 개발하지 않는가? 어쨌거나 가이드 아주머니는 덕분에 순천만에서는 좀더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졌다고 희희낙락했다.

가는 길에 가이드 아주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았다. 바로 여행객들의 여행 경위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척 하며 유재석 강호동을 뺨치는 진행 능력을 보여준 아주머니는 '이래뵈도 04학번!'이라고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관광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외견상 부족함 없는 능력과 이르지 않은 나이에도 변치않고 전문성을 더해가는 그 열정이 참으로 본보기가 될 만 했다.

순천만

앞서 어제 '일단 버스를 이용해보고, 다음 날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오랜 시간 즐기자'했던 결심이 기억나는가? 사실 그 말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둔 곳이 바로 순천만이었다. 순천만의 상징인 S자형 수로를 중심에 담는 수많은 여행 사진들에서 순천만은 넉넉한 산책로와 출사지를 보장할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순천만 생태공원은 생각보다 출입로가 정형화된, 자유가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는 않는 장소였다.

일단 전망대 가는 길의 개펄과 드넓은 갈대밭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황금빛 가을이 아니라서 그런지 정작 소문의 갈대밭에는 별 감흥이 없는데, 개펄 위에 구축된 다리 위에서 짱뚱어와 농게를 눈앞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들은 구멍을 드나들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등 -이들에게는 생계를 건 싸움이겠지만, 미안하게도- 보고 있는 것이 무척 유쾌했다.

반면에 흔들거리는 독특한 다리를 지나서 전망대로 등산을 시작하면 여느 산과 비슷하다. 중간에 계단으로 된 길과 비교적 평탄한 길로 이루어진 갈림길이 있는데, 각각 '명상의 길'과 '다리 아픈 길'로 명명되어 있어 이보다 직관적인 이름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 곳을 지나 총 3층으로 된 용산전망대에 이르면, 마침내 소문의 S자형 수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으로 늘 접하던 바라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 싶었지만, 실제로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비유하자면 향일암과 비슷하다. 향일암의 절벽 위에서 대하는 끝없는 수평선이 파노라마 사진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안겨주듯이, 순천만의 습지는 과연 세계 5대 운운하는 말이 헛 말이 아니라는 듯이 경이롭다. 그리고 망원경으로 들여다 보면 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곁의 청년들이 '와, 새 날아간다!'라며 소리를 지른다. 말로는 전혀 별 것 아닌 것 같은 생태계가 그 장관 안에서 숨쉬고 있으니 유달리 새삼스러운 게다.

전망대에서는 와우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입구에는 '이 길로는 생태공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경고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번에 순천 여행을 오기 전에 유의해서 본 곳이 와우 해변과 왜성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길로 나섰어도 괜찮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때는 유명한 순천만의 석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가 네 시가 좀 못 되는 시간이었으므로 한여름의 일몰을 볼 때까지는 세 시간도 더 남아있었다.

달리 이동할 곳도 없어 전망대 2층의 그늘에서 바람을 쐬기도 하고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곁에는 나처럼 일몰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서너 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투어 버스를 이용해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간낭비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체 여행객이 드문 평일 오후에 앞으로는 바다의 풍경과 뒤로는 풀숲의 소리를 끼고 맑은 바람을 쐬며 시간을 쓰는 것은 사실 허비가 아니다. 적어도 그때 그 시간엔 그러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풍경을 대할 때의 충격이 아니라 풍경을 끼고 멍하니 앉아 즐겼던 시간에 느낀 행복들이다. 지금, 그리고 지난 내 생애동안 가장 필요로 했던 여유, 충전, 관상과 침잠, 그 밖의 모든 것들을 그 시간동안에는 뜻하지 않아도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별로 중요친 않지만) 일몰은 마주하지 못했다. 일기예보대로 구름도 많았고, 원래 여름에는 안개가 많아 맑은 경치를 접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을에 다시 한번 가 보아야겠다. 마침 해변을 거닐지 못했으니 다시 올 핑계도 있는 게다.

하루의 마무리

오는 길에 택시 아저씨의 제안으로 순천역으로 돌아가는 여대생 팀과 한 차를 타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마침 다들 수원에서 온 사람들이다. 기사 아저씨는 좋다며 같이 식사를 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서로 서먹하여 내리고 나서는 곧 남남이 되어 식사를 하러 갔는데, 웬지 모르게 기사 아저씨께 미안한 마음이 들고 인연을 내친듯 해 아쉽고 그러하다. 좀더 붙임성이 있었다면 버스 내내 옆 자리에 앉았던 (역시 홀로 여행을 하는) 남학생과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것들이 지나고 보니 아쉽다.

입고 온 옷은 땀에 젖었지만 아직 여벌의 옷이 있어 순천역 근처의 찜질방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그날 본 곳들이 생각과 달리 다들 하루내 보내기는 적당하지 않은 듯 해서 고민하다가 다음 날은 가까운 보성에 들러보기로 했다. 마침 휴대폰 등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가까운 PC방에 들러서 충전을 하고, 하는 동안 간단하게 여행기를 적고, 남는 시간에는 간만에 게임을 했다. 여행지에서 게임이라니 우스운가? 그러나 달리 밤에 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편이 더 나았다. 대신에 나는 매일 들리던 포털이나 커뮤니티에 들리지도 않았고, 메일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여행객다운 밤이었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