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책을 읽는 내 목소리다. 마치 여러 개의 머리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있듯이 귀에서 끊임없이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흐름이 없다. 분명한 시작과 끝이 없다는 뜻이다. 모두 짧고 어려운 내용의 말이 규칙 없이 마구 떠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읽어보았던 책들도 아니다. 너무나 낯선 문장이기 때문이다. 내 귀에서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문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무겁고 더 많은 질문이 나를 에워싼다. 도대체 내가 그 이상한 글의 토막을 머릿속으로 읽을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꼭 바퀴를 모른 체 자전거를 먼저 만들고, 전화기 없이 전화번호를 먼저 알아낸 것과 같이 목소리는 무식한 내 머릿속에서 해석되지 못한 체 중얼중얼 떠다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목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은 그저 목소리가 가리키는 쪽을 따라가면 된다. 그곳이 늪이건 벼랑이건 간에 나는 계속 따라간다. 그것만이 우리를 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 정신없이 살아가면 정말 정신이 없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