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시간은 정말 빠르다. 1시간을 1/60으로 계산하니 1분이 되었고, 1분을 다시 1/60으로 계산하니 1초가 되었다. 계속 같은 방식으로 나누고, 쪼개고, 계산하여, 다시 반대로 1초를 60배로, 완성된 1시간을 배로 또 배로 부풀리니, 내 나이 31살. 자그마치 11315일을 눕고 일어난 나이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그마치란 부동사는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내가 지금까지 인분으로 배설했던 라면의 양이 이 수치를 훨씬 능가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싸구려 방황과 사랑에 고뇌하고 아파하며 이 다섯 손가락으로 움츠린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하던 것이 이 수치의 넉 배는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떻든 간에 나는 이미 그 수치가 37529였는지, 아니면 12184였는지 조차 잊어버린 체, 소형 냉장고 속에 놓인 물통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9층 창밖은 침침한 집 안과 대조적으로 매우 이르고 밝은 아침이었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구름이 하늘에서 둥실둥실 회상(回翔)하고 있는 모습은 혹시 하나의 생명과 영혼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실없는 망상일랑 하지 말고 대학에나 들어가라며 나를 에워쌌던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상상을 멈추고 관자놀이 부근에서 두개골까지 톡톡 두드리는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몇 시간 전에(그러니까 아직 자고 있었던 새벽쯤에)아파트 근처에서 고약한 대학생 여러 명이 깡통을 발로 걷어차는 소음 때문이 거의 확실했다. 사실 나의 신경은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잠을 잘 때는 어느 정도 부조리한 소음(음파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이라도 듣게 되면 지독한 정신적 긴장 상태에 빠지고 만다. 더 끔찍한 것은 그 긴장 상태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당장 깨어나지 못하고 가위에 눌리듯 신음만 토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정신은 몹시 예민하나, 거꾸로 육체는 어처구니없이 둔해서 바로 일어나 창문을 닫는 다거나, 간단히 이불을 뒤집어쓰는 행동조차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몸은 잠들 지어도, 정신을 항상 깨어있으라' 어떤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한 구절은 그에겐 진취를, 나에겐 악몽을 주고 있다. 죄야 많기는 하여도 어찌 이렇게 잔혹한 괴병을 나에게 안겨주었는지, 저 위에 계신 양반에게 참으로 불만스럽다.

·········. 이제 이 얘기는 관두기로 하자.

어찌되었든 그 관자놀이에서 두개골을 두드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대신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차가운 구둣발소리와 회전하는 승용차의 엔진 소리가 아파트를 때리며 여기저기로 울려 퍼지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싱겁게 들렸다. 그리고 외부와 내부를 투명하게 이어주는 모든 유리에는 엷게 서리가 맺혀, 나에게 "지금 밖은 몹시 쌀쌀합니다. 당신은 외출하지 않는 게으른 인간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 없겠군요." 라는 걸 일기애보를 대신해 설명해 주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집 안은 이미 냉장고 속과 별 다를 바 없이 서늘했다. 두 번이나 밀린 가스요금 청구서의 마지막 독촉장의 기한시일을 무시해버린 벌을 바로 지금 쓰리게 맛보고 있는 것이다. 가물가물한 기한시일을 더듬더듬 생각하며 동시에 지니고 있는 금전 상태도 계산해 보았으나 모든 타산이 극에서 극이었기 때문에 나는 안락한 따스함을 포기하고 당장에 이 공복감을 해결 할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였다. 11315일이 다 되어서도 인스턴트식품을 꼬박꼬박 배 속에 채우는 생활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물통을 냉장고 속에 넣어두면서 문득 깨달았다.


일본식 된장찌개와 며칠 전에 시킨 마파두부 남은 것, 양송이 볶음과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독특한 음식이 되었다. 스스로 퓨전 음식이라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


eyes heavy with slee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