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친구 한 놈의 여자친구가 어학연수를 가서는 다른 놈과 눈이 맞아 이별을 통보했다고 모두가 집합했습니다. 친구는 조악한 월급에 값싼 보드카를 두 명이나 시켜놓고는 연신 술잔을 들어 입 속에 쑤셔박고 있었습니다. 가엾은 새끼. 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비단 남일이 아닌 것입니다. 제 여자친구도 유학을 결정했고 어학연수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 나누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막연한 미래지만 그녀와 나는 유익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 거야 라는 당돌한 신뢰가 가슴 속에 존재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밖에 나가서 또 곱창을 먹었을까. 어머님이 포장해오신 반찬들로 저녁을 먹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저는 몰래 그 자리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약간의 취기가 관자놀이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찾아가서 그녀의 부모님이 귀가하가셨으면 깜짝 놀래켜줄 심산이었습니다. 문득 지난 주의 건조한 통화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바쁘고 힘든 날들에 혼자 자취방에 둔 기억이 많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들고 의기양양하게 그녀의 옥탑방을 향해 걸었습니다. 조용히 4층에 올라 차가운 현관문에 귀를 댔습니다. 들릴 듯 말듯. 어떤 말에서는 조금 큰 목소리가, 어떤 말에서는 희미한 목소리가 두터운 현관문을 지나 정리되지 않은 음성으로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달콤한 밀어는 결코 그녀의 부모님이나 친오빠가 내는 목소리가 아님을 저는 강력하게 부정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황급히 건물 밖으로 내려와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두 모금 깊이 빨아들이자 떨리는 손에서 담배가 떨어졌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고 사정없이 후들거리는 무릎을 마구 두드렸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어 가만히 있어도 고막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습니다. 담배를 주워 다시 입에 물었지만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한 참동안 수백가지 생각이 오고갔습니다. 넋을 놓고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검은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아직 단단히 녹지 않은 아이스크림을 그 녀석에게 던져주고는 골목을 가로질러 대로까지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 무의미한 뜀박질 소리가 그녀의 옥탑방까지 전달 되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순간 그 것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통의 나약한 존재. 가 바로 저였으니까요. 번화한 대학로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리며 밤을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노파가 커다란 노점을 끌고 먼 차도를 횡단하고, 젊은 대학생이 토사물을 자기 얼굴에 파묻고 아스팔트에 자빠져 있었습니다. 아무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소주를 시켜 병 채로 목구멍에 쑤셔넣었지만 테이블 위에 다시 토해버렸습니다. 직원 두 명이 달려 와서는 죄송스럽지만 나가달라고 간청하기에 저는 계산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참 뒤에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을 그녀의 잠긴 척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습니다. 아무 일 없는 일상적인 그녀와의 안부 전화. 그것이 분기의 마지막 단계일 수도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안. 반겨주는 것이라고는 9년 째 기르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나병 환자처럼 검게 멍든 집안. 방치된 절망의 먼지 위에 쓰러져 저는 아주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